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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봉하마을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문하는 분향소를 설치하고 방문객들이 분향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또 봉하마을 주민 10여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인 하의도 후광의 생가로 가서 조문할 작정이라 한다. 그 동안 많은 호남사람들이 봉하마을로 찾아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한 데 대한 감사의 답례로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범상하게 넘길 작은 일 같지만 참으로 반가운 모습이다. 두 전직 대통령은 각기 경상도와 전라도 출신이기는 하나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 고졸 학력을 지녔고 반독재 투쟁에 앞장 서 활동하다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또 두 사람은 이른바 지역감정에 휘말리면서 정치활동을 전개해 왔고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온 몸을 바쳤다.
두 지역의 갈등유발에 대해 역사적 사실 두어 사례를 알아보기로 하자.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가 대립하면서 오랜 분쟁을 겪었다. 두 왕조가 멸망한 뒤 백제문화권과 신라문화권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고려에 들어와 왕건이 비록 금강 이남 지역 사람은 등용시키지 말라고 말했다지만 그 뒤 전혀 실효성이 없었다.
조선에 들어와 나라에서는 지역의 넓이와 인구의 수에 따라 국가의 조세를 매겼는데 두 지역은 비슷한 비율을 차지했다. 지방 과거 합격자의 숫자도 비슷하게 정수를 두었고 인재 등용도 비슷하게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국가에서는 충청도를 포함해 삼남지방을 중시했다.
또 임진왜란 때에 경상도가 왜구의 손에 넘어가 있는 상태에서 전라도 사람들이 의병에게 양곡을 댔고 진주전투에도 전라도 의병들이 참가했고 이순신 휘하에서 군졸과 양곡을 공급해 협력했다. 그리해 이순신의 입에서 '호남이 없으면 조선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또 1894년 동학농민전쟁 시기 두 지역에서는 연대를 해 반봉건투쟁에 나섰다. 전라도 금구 출신인 청년 김인배는 영호대접주라는 직함을 가지고 섬진강 일대에서 활동했다. 그는 진주지역 농민군과 협력해 진주성을 차지했고 일본군이 출동했을 적에는 두 지역 농민군이 하동 고승산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런 관계 속에서 때로는 라이벌 의식도 있었겠으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강력한 유대관계를 맺었다.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자 민씨 세도가 민영준은 청나라에 구원병 파견을 요청하면서 전라도 사람들이 완악하다고 말했으나 지역감정을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광복 후 국내는 극도의 혼란을 겪었으나 두 지역의 지역감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전라도 출신인 조재천이 대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입후보해 당선되는 등 차별을 두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두 지역의 지역감정은 1971년 대통령 선거 당시 경상도 출신 박정희와 전라도 출신 김대중이 맞붙으면서 유발되었다. 당시 먼저 도발한 쪽은 박정희 참모들이었다. 그들은 '전라도 사람들이 쳐들어온다'거나 '김대중이 집권하면 경상도 사람들은 다 죽는다'는 따위의 말들을 퍼뜨렸다. 이에 전라도 사람들도 질세라 맞받아쳤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선거철마다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더욱이 박정희집권 기간 울산 창원 구미 등 경상도 지역 중심으로 공업단지가 형성되고 경상도 출신 인사들이 집권세력의 핵심으로 등장하자 호남사람 푸대접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식자들은 '망국의 병'이라고 한탄했지만 작은 목소리에 지나지 않았고 풀 길이 없었다.
이제 두 전직 대통령이 연달아 서거를 했는데 이를 계기로 지역감정이 해소되고 개인끼리나 선거를 통해서도 상호 이해와 민주적 가치를 존중하는 시민의식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의 뼈저린 반성을 촉구한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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