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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로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믿었던 뉴욕 심장부인 쌍둥이빌딩을 강타당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테러리스트들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때 신문에 더러운 폭탄이란 용어가 눈에 띄었다. 휴대용 핵폭탄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나는 폭탄에 더럽다, 깨끗하다는 말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허구성을 시로 썼다.
'더러운 폭탄이 어디 있겠어요/ 하늘이 깨끗하다는 말은 유효하지만/ 인간이 만든 탐욕덩어리에/ 깨끗하다 더럽다 이런/ 형용사가 어울리기나 하겠어요// 양귀비꽃보다 수수꽃다리/ 까마귀보다 비단결 꾀꼬리/ 어쩌구 저쩌구하는 말은 사절합니다/ 앙증맞다는 말만 무사 통과시킵니다// 탐욕으로 쏘아댄 폭탄 때문에/ 운동장만한 연못이 생겨난다면/ 멧비둘기 해오라기 원앙새 소쩍새 오색딱따구리 팔색조/ 구슬댕댕이 물앵두 섬백리향 댕강나무 누리장나무/ 소금쟁이 미꾸리 각시붕어 금강모치 납줄갱이 황쏘가리/ 등 푸르른 강물도 덩달아/ 소문없이 죽어 나가겠지요// 나는 오늘/ 깨끗한 폭탄이란 말을/ 정중하게 사양합니다'. ('정중하게 사양합니다' 전문)
21세기에도 인간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인간을 죽일 수 있을까 하는 화두로 첨단 무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 정점에 핵폭탄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말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두 개의 핵폭탄 세례를 받고 무조건 항복하였다. 그 가공할 위력을 목격한 전 세계인들은 핵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핵폭탄을 가져야겠다는 달콤한 유혹에 빠졌다. 핵폭탄을 선점한 몇몇 나라에 뒤이어 핵을 갖기 위해 후발 주자들이 가세하고 있다. 핵무기의 원료인 죽음의 재 플루토늄을 얻기 위해 핵발전소가 지구촌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평화적 이용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면서.
그러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은 대자연의 재앙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강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로 이어진 일본발 참사는 지구촌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죽음과 폐허인 방사능 피폭으로 통제불능에 빠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면서 우리의 원전도 과연 안전할까. 봄날에 부는 서풍만 믿고, 경제 논리와 안전 타령만 앞세우는 위정자들의 모습은 진실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제 우리도 시효가 끝나가는 고리와 월성원전 1호기의 가동은 반드시 중단시켜야 한다. 나는 오늘 원전르네상스라는 말을 정중하게 사양한다.
박진형(시인·만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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