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는 매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 입력 2011-04-04  |  수정 2011-04-04 07:54  |  발행일 2011-04-04 제23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봄보다 서둘러 매화꽃을 피워두고 마음을 들까부른다. 어느 화가는 화선지 위에 굵직한 나무등걸을 그려두고 하루에 한 송이씩 매화꽃을 그려넣어 100송이째 되는 날 봄이 왔음을 알렸다고 했던가. 며칠 전 매화꽃 피었다는 한 소식이 왔다. 고령 박곡 이규목 화백의 별화실은 옛그림 속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다. 올해도 어김없이 매화꽃을 피워놓고 친구들을 불러다 한담을 즐긴다. 달밤에 화실을 감싸고 도는 매화향에 꽃멀미가 도진다.

조선조 거유 남명과 퇴계는 매화를 좋아하였다. 퇴계는 임종 직전에도 하인에게 매화나무에게 물을 주라고 할 정도로 지독한 매화 사랑쟁이였다. 한강 정구도 두 스승 못지않게 매화를 아꼈다. 낙향하여 성주 회연 대가천 변에 초당을 짓고 매화 100 그루를 심은 뒤 백매원(百梅園)이라 일렀다. 남명 문하의 최영경이 한강을 찾아 왔으나 주인이 출타중이었다. 그는 한매(寒梅)라야 매화의 기품이 있는데 꽃이 늦게 피었다고 하인에게 도끼를 가져오게 한 뒤 매화나무 100그루를 모두 찍어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하니 돌아갔다고 한다. 눈곱만치의 멋과 여유도 없는 딸깍발이다.

어느 해던가. 이 화백과 둘이서 매화 기행을 다녀왔다. 산청 남사마을 하씨 고택에 핀 분양매, 단속사 텅 빈 절터에 핀 정당매, 지리산 천황봉이 올려다 보이는 산천재 뜰에 홀로 핀 남명매를 순례했다. 수백 년 지나도 한결같이 꽃을 피워내는 매화 속을 노닐다 온 그 하루는 정말 꿈결같았다. 또한 섬진강변 수만그루 매실나무 속을 거닐다 왔노라고, 몸에서 매화향이 그윽하다고 호들갑을 떤 적도 있었다. 이런 꼴의 나도 어쩔 수 없이 탐매주의자(貪梅主義者)인가보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봄도 봄같지 않다. 난분분 바람결에 매화꽃이 지기로서니 누구를 탓하랴. 중국의 사방득은 "몇 번이나 생을 닦아야 매화꽃에 이르랴"고 하지 않았던가. 홀홀 떨어지는 꽃잎에 묻혀 봄이 다 가기 전에 몇몇 묵객들이 모여 열두 폭 화첩을 펼쳐두고 매화첩이라도 꾸며야겠다. 어렵고 힘든 한 세상을 건너가는 한 시인으로 이쯤에서 매화를 좋아하지 않기로 한다. 언감생심 난에 이어 매화까지 좋아한다면 하수상한 시절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꽃이 지고 없다고 매화나무를 베어버리는 어리석음은 경계하련다.


박진형(시인·만인사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