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김경률 생각

  • 입력 2011-04-07  |  수정 2011-04-07 07:51  |  발행일 2011-04-07 제19면
[문화산책] 김경률 생각

"(…) 하관이 되자 눈발이 날렸다/ 관을 내리고 흙을 덮으려는 순간/ 서울서 내려와 오일장 지키던/ 평론가 윤모 형,/ 이 자식 추우켜 야, 이거 입엉 가라/ 입었던 바바리 벗어 관을 덮는다// 알몸으로 태어나 평생 변변한 옷 한 벌 갖추지 못했으나/ 생일날 이승 떠나며 바바리 얻어 입은/ 제주 출신 영화감독 경률이"(김수열 '옷에 대하여')

매년 4월이 돌아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김경률 감독이다. 김 감독은 최초로 제주 4·3 항쟁을 장편극화로 만든 독립영화감독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세상에 없다. 2005년 첫 장편을 만든 그 해 12월 자신의 음력 생일에 요절해 영화 '끝나지 않은 세월'은 그의 유작이 되어버렸다.

제주 출신 김수열 시인이 쓴 위 시에 나오는 '윤모 형'은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을 지낸 양윤모 선생이다. 양 선생 역시 제주 출신이다.

김 감독의 기막힌 죽음을 슬퍼하는 제주의 여러 벗들이 차려놓은 한바탕 '축제' 같았던 그날의 풍경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이 일에 대해 필자는 당시 '녹색평론'이란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고, 이듬해 필자가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한 영화제에 김 감독이 생전에 만든 단편과 다큐멘터리들을 모아 '김경률 감독 추모전'을 열기도 했다.

그리고 필자가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지역에 남아 활동하자는 마음을 먹게 한 사람이 김 감독이다. 말하자면 김 감독은 죽어서도 나를 가르친 고마운 '스승'인 셈이다.

제주에 4·3 항쟁이 있다면 대구엔 10월 항쟁이 있다. 아직도 '폭동 사건' 등으로 잘못 알려져 제대로 복권되지 못하고 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강제 해산되었던 유족회가 2009년 '10월 항쟁 유족회'로 재결성되었고, 올해 2월엔 대한정치학회 주최로 영남대에서 공동학술회의까지 열렸다. 머잖아 10월 항쟁 역시 4·3 항쟁처럼 복권될 날이 올 것이다.

나같은 B급 감독은 감히 꿈도 못 꿀 일일테지만, 언젠가 10월 항쟁도 4·3 항쟁처럼 영화화가 될까, 그럼 그런 영화를 만들 김경률 같은 올곧은 감독이 대구에서도 나올까, 하는 걱정을 미리부터 해본다.


장우석(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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