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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역 출판계에 주목할 만한 책이 나왔다. 바로 대구의 미술평론가 김영동씨의 '근대의 아틀리에'다.
김씨가 한 지역 일간지에 1년 넘게 연재한 '대구 근대미술 산책'을 묶은 것으로, 이 책을 펴낸 '도서출판 한티재'는 지난 4월 대구에서 문을 연 작은 지역 출판사다. 친근하게 느껴지는 출판사 이름은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의 작품 '한티재 하늘'에서 따온 것이다.
한티재는 그동안 권정생 선생 3주기 추모문집 '애국자가 없는 세상'을 시작으로,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낸 신경과 전문의 김진국씨가 쓴 '우리 시대의 몸·삶·죽음'과 지역의 젊은 인문학자 김재현씨, 정승원씨가 대구·경북지역의 여러 인문학 공부모임들을 찾아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인문학을 만나다'를 펴냈다. 김진국씨는 이 책으로 서울의 한 유명 시사 주간지에 '금주의 저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녹색평론사'가 1991년 대구서 처음 문을 열었다는 걸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영남대 교수를 지낸 김종철씨가 발행인으로 있던 '녹색평론'이란 잡지를 두 달에 한 번 펴내는 출판사다. 지금은 판권이 다른 곳으로 넘어갔지만 '오래된 미래' 같은 책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곳도 여기다. 창사 이래 17년간 지역을 지키던 녹색평론사가 서울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곤 당시 필자는 짧게 절망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지역에서 책을 펴냈으나, 지역 출판사로서의 정체성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대구에 남은 편집실 직원들은 절치부심 끝에 사무실이 있던 자리에 다시 출판사 간판을 걸었다. 그게 한티재의 시작이었다. 저 유명한 시구처럼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 셈이다.
그간 지역 출판사에서 펴내는 책들은 일부를 제외하곤, 조악한 북디자인에 성의 없는 편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세련된 책들에 익숙해진 요즘 젊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긴 역부족일 수밖에. 반면 한티재의 책들은 하나같이 유려한 장정과 깔끔한 편집이 돋보인다.
지역 출판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한티재가 펴낸 좋은 책들이 부디 많은 사랑을 받아 '다양한 목소리들을 널리 전할 수 있는 지역의 든든한 출판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장우석(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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