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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이용해 겨울옷을 넣고 여름옷으로 내놓다보니 '이제 우리한테 겨울옷, 여름옷의 개념자체가 없어져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봄의 이상기온과 황사, 여름의 폭염과 열대야, 가을의 태풍과 집중호우, 그리고 겨울의 이상한파와 폭설 혹은 이상고온 등이 그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종류의 이상기온, 황사 등에 관한 기록이 있다. 먼저 황사로 인한 비를 토우(土雨), 묵우(墨雨)라 해 흙비, 먹비라고 불렀다. 주로 3~5월에 많고, 간혹 2월이나 6월에도 내렸다. 이때는 백성의 원망과 사치가 흙비를 부른 것이므로, 몸을 닦고 마음을 반성하는 시기로 삼게 하기 위해 성종9년에는 흙비로 인해 금주령을 내리는 일에 대해 의논한 기록이 있다.
지난해 3월 대구에 내린 눈폭탄은 초·중·고 임시휴업령을 내리게도 했다. 이처럼 철없는 눈은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태종3·5·6년에는 4~6월에 강릉, 소백산, 금강산 등지에 눈에 내렸고 태종9년·세종19년·중종15년에도 한여름에 눈이 내렸다. 조선왕조실록의 태종실록 18권 9년 7월27일 첫번째 글에는 "금년에 천문(天文)이 변을 보여 풍우와 뇌진(雷震)·상박(霜雹)·산붕(山崩)·수일(水溢) 등으로 인해 죽은자가 심히 많으니, 모두 부덕한 소치"라 적혀있다. 왕 본인의 부덕의 소치로 여겼던 것이다.
여름의 이상저온현상도 찾을 수 있다. 태종1년 4월, 세종28년 5월 등에는 이상저온으로 솜저고리를 입었다고 되어있다. 겨울의 이상고온현상, 즉 봄 날씨 같다는 기록도 곳곳에 나온다. 이에 대해 세종7년 12월 "천기가 불순해 겨울이 봄의 명령을 행하고 있다. 이것은 정사가 밝지 않고 기강이 방종하고 해이한 때문"이라고 해 왕 본인은 물론 대소 관리의 기강이 해이함을 경계했다.
현재의 기후변화를 조선시대식으로 옮겨보면 "평소 백성과 대소관리가 에너지를 흥청망청 사용했고, 각종 환경오염과 쓰레기 재활용을 실천하지 않아, 오늘날의 재변(災變)이 생겼다. 하늘과 사람의 이치가 같아 현미무간(顯微無間·현상과 본체는 서로 떨어질 수 없음)하니, 상서로움과 재이(災異)의 응함은 오직 사람으로부터 감응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모두 한번 되새겨볼 말이 아닐까 한다.
이지희(경북대 건설토목공학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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