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산에서 문화를 숨쉬다

  • 입력 2011-05-03  |  수정 2011-05-03 07:52  |  발행일 2011-05-03 제20면
[문화산책] 산에서 문화를 숨쉬다

지난 일요일 동네 앞산을 다녀왔다. 황사가 심하고 바람도 거세서 조금 망설여지기는 했으나, 하루하루 산의 여백을 채워가는 신록의 유혹을 견뎌낼 수 없었다. 지난주까지 약간 남아 있던 봄꽃의 자국은 이제 완전히 사라지고 빛나는 초록들이 음영까지 넣어가며 덧칠을 하고 있었다.

초입의 비교적 완만한 경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에 갈림길이 있다. 부부로 보이는 두 어르신이 먼저 도착해 숨을 몰아쉬며, 어느 길로 가는 것이 더 나은지 물으셨다. 내가 가려는 왼쪽 길은 상당히 가팔라 능선까지 빨리 올라갈 수는 있으나 힘이 드는데다가 인적이 드물어서 길이 좁고 험하니 오른쪽 길로 가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 길로 접어드는 것을 보고 나는 내 길로 들어섰다. 마음속으로, 오른쪽 길도 그 전 길보다는 훨씬 가파른데 하며 조금은 안쓰러웠다.

같은 길을 가도 어떤 사람은 평지처럼 가고 어떤 사람은 오르막처럼 간다. 평지도 오르막이 되는 사람이 있고, 오르막도 평지가 되는 사람이 있다. 힘이 드는지 안 드는지는 길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정도는 평지나 다름없지 하며 쉬운 길도 누군가에게는 어려운 길이 될 수도 있다.

문화가 야만의 반댓말이라면 문화는 다른 존재에 대한 감사와 배려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첨단 시설의 공연장을 충분히 갖추고 세계적 수준의 공연과 전시를 쉴 새 없이 기획·추진한다고 해도, 지식이 많고 문화 행사나 상품을 늘 향유하며 살더라도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야만이리라. 다른 존재란 멀리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세포와 장기부터 가족과 이웃, 작은 식물과 동물, 집 밖의 거리, 신천, 금호강, 팔공산, 대기, 우주 등이다. 산과 강과 사람이 조화롭게 공존하지 못하면서 문화를 논한다는 것이 가소롭지 아니한가. 가까이에 있는 작고 친근한 것에 대한 감사와 배려와 일체감을 가진 사람이 문화인이 아닐까.

산이 가팔라질수록 가슴과 어깨는 더 빨리 풀무질을 한다. 산속에서 쉬는 숨은 산 밖에서 쉬는 숨과 다르다. 그저 얍삽하게 얄팍한 숨만 쉬며 살지 말고, 몸 안의 모든 세포부터 산과 대기와 우주의 모든 생명과도 함께 쉬라는 숨이다. 영혼도 함께 쉬라는 숨이다. 산은 절대 얕은 숨만 쉬고 가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산은 큰 가르침이다.


배광호(경북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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