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앞자리

  • 입력 2011-05-05  |  수정 2011-05-05 07:39  |  발행일 2011-05-05 제15면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의를 해온 어느 교수님은 수업 중에 학생들의 앉은 자리만 보아도 성적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미리 강의실로 뛰어와 앉는 앞자리의 학생들은 눈빛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20년 넘도록 대학에 몸 담아온 분의 말씀이니 일리없는 말은 아닐 것이다.

강의의 요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필기를 하고 귀를 곤두세우니 시험을 잘 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학생들이 굳이 앞자리를 택한 것은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기 위함이리라. 수업 중에 엉뚱한 생각을 버리고 오로지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스스로 채찍을 가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자리에 대한 책임감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 여겨진다.

‘될성부른 나무 떡잎부터 다르다’고 하였는가. 마음의 자세가 갖춰진 사람이 목적지에 일찍 도달한다. 대신 뒷자리에 앉은 학생은 마음이 느슨하여 자세가 헝클어지기 쉽다. 대충 훑어보아도 지각을 즐기고 과제에 소홀한 학생들이 뒷자리 쪽에 쏠려있다. 한 학기 성적을 평가해 보지않고 앉은 자리의 위치만 보고서도 성적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자리와 성적은 비례관계라는 것이다.

더욱이 그 교수님은 자신이 대학에 다닐 때 한 번도 일등을 놓치지 않은 것은 자리 때문이라 했다. 항상 맨 앞자리를 고정좌석으로 여기며 행여 누가 거기에 앉아 있기라도 하면 온갖 상황을 들먹이며 자리를 양보받았다고 하셨다. 사정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간식까지 사주는 호의를 베풀기도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다른 학생들도 시간이 흐르자 그 자리를 아예 비워두더라고 했다. 고개도 아프고 앞자리가 꼭 좋은 환경만은 아닐진대, 끝까지 그 자리를 고집한 것은 자리에 대한 자신만의 신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하고 느슨한 만큼 발전이 더디고, 힘든 만큼 자신의 목적지에 빨리 도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이 잘 따르지 않을 때가 많다. 안주되어 있는 마음을 긴장감으로 다잡고 싶어 슬그머니 자리를 앞쪽으로 당겨 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것인지 잘 모르지만, 앞자리에 가면 뭔가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노애경(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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