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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참스승님이 두 분 계신다. 10여년 전 소리공부를 위해 무작정 상경을 감행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이신 이춘희 선생님에게 사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지방에서 올라가 전공이 거문고인 내가 민요를 하겠다고 했으니, 선생님께서 처음엔 의아해 하셨다. 하지만 내 의지에 못이겨 간단한 테스트를 하셨다. 나는 힘찬 목소리로 ‘제비가’를 불렀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잘해서가 아니고 용기가 가상해서 받아준다”며 “다음 주부터 올라오라”고 허락하셨다.
그렇게 인연이 돼 주말마다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고 서울로 향했다. 선생님께선 내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니 얼마 배우다 말겠지 싶으셨는지 이름도 부르지 않고 대구서 왔으니깐 ‘대구’로 부르셨다. ‘선생님께서 언제쯤 내 이름을 불러주실까.’ 김춘수의 ‘꽃’이란 시를 떠올리며 선생님에게로 가서 선생님의 꽃이 되고 싶었다. 나는 내 빛깔과 향기를 찾으려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전국에서 많은 제자들이 올라와 얼마 있다가 사라지고 또다시 들어오고, 그러다보니 선생님께서는 일일이 이름 대신 특징으로 기억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다 3년이 지나 박지성이 히딩크 감독을 만나 빛이 나던 시절, 난 선생님께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축구엔 박지성인 것처럼 국악엔 김지성이 언젠가는 선생님의 자랑스러운 제자가 되겠노라고. 그 이후 선생님께선 날 부르실 때 대구가 아닌 “지성이 왔니. 집에 가서 밥 먹고 내려가거라” 하시며 손수 밥상을 차려주고 이름도 불러주셨다.
몇 년 전 어느 비 오는 날 경주공연에 오셔서 제자를 위해 당신이 챙겨온 비옷을 주면서 “너나 이 옷 입고 조심히 대구 가거라”하며 정작 선생님은 비를 맞고 서울로 향하셨다. 스승님의 크나큰 사랑 이제서야 알 것 같다.
또 한 분의 스승은 고등학교 은사님이다. 제자가 개인발표회를 할 적마다 저금해서 한두 푼 모은 돈을 주면서 “넌 대구가 아닌 세계로 뻗어나갈 국악인이 될 거야”라는 말로 용기를 주시는 스승님!
요즘 진정한 스승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난 이 두 분이야말로 이 시대의 참스승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돌아오는 스승의 날 꽃 한 송이 들고 스승님을 찾아뵈어야겠다.
김지성(김천시립국악단 수석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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