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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도 없이 착 달라붙은 짓궂은 별명이 있나요? 동녘 동(東) 아름다울 미(美) ‘동미’란 이름 대신에 ‘동’자의 동음이 불러낸 ‘동태’ ‘동치미’란 별명을 가진 이도 있고요. 우스꽝스러운 버릇이나 남다른 음성조차도 가차없이 주물럭 반죽이 되어 이름 옆에 내걸리곤 하는데요. 이름이 이변이 없는 한 영구불변이라면, 별명은 진보와 퇴행 또는 곁가지를 치기도 하죠.
나에게도 별명이 있긴 한데요. 그 변천사를 되돌아보면 꽤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요.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날의 별명은 ‘꼼쥐’예요. 작은 체구에 비해 쌩하니 달리는 모습이 생쥐 같다고 하여 붙여진 거였죠. 어린 맘에 쥐와 동일시된 듯하여 무척 싫어했지만, 또래 친구는 물론 오빠 친구들까지도 부르는 “꼼쥐”는 한참을 따라 다녔어요. 중학교 땐 “풀종이”로 불리기도 했어요. 아, 시골에서 전학 온 촌뜨기가 칠판에 선생님의 전달 사항을 적었는데요. ‘자연학습 준비물/1.풀종이’라 적는 순간, 교실이 술렁거리더니 일파만파 웃음이 번져나며 자연스레 달라붙은 거였죠. 고향이 준 거북한 선물이라 여겼어요.
그 후 오랜 세월 그럴듯한 별명 없이 다다른 마흔 어귀에서 스승으로부터 별명을 받았어요. 종강 후 홀가분함과 아쉬움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선생님과 동문 몇은 담소를 나누며 식당 근처 나직한 언덕을 걸었지요. 하늘까지 붉게 칠갑하던 해가 지고, 달 없는 밤은 칠흑이었죠. 선생님의 요청으로 어느 무덤가에 둘러앉아 돌아가며 애창곡 한 곡씩을 불렀어요. 반딧불이가 하롱하롱 조명등을 켰고요. 의식을 치르듯 돌아온 순서에 나는 유감없이 불렀지요. 박수에 못이긴 척 한 곡을 더 불렀던가요. 어둠을 더듬으며 내려오는 길 선생님은 ‘꺾기’라는 별명을 붙이셨죠. 학기 내내 이어졌죠. 어느 새 몇 년이 지났네요.
며칠 전 동문회에서 뵌 선생님은 여전히 “어이, 꺾기”라 부르셨어요. 근사하지 않은 그 별명이 그렇게 화사하게 들리다니요. 정식과 비정식의 오묘한 맛이랄까요.
그댄 어떤 별명으로 불리나요?
김기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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