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녹향에서 문화를 간병하다

  • 입력 2011-05-24  |  수정 2011-05-24 07:50  |  발행일 2011-05-24 제20면
[문화산책] 녹향에서 문화를 간병하다

지난 토요일 동성로에 있는 고전 음악감상실 ‘녹향’에서 1천525회 예육회 정기 음악감상회가 있었다. 낡은 SP·LP판과 90세 넘은 주인 때문인지 녹향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른다. 아직도 녹향을 이끌어가는 이창수옹은 조금 일찍 귀가하시고 자제인 이정춘님의 해설로 감상회가 진행됐다.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과 아리아 ‘저녁별의 노래’로 시작, 베르디의 ‘아이다’ ‘나부코’를 거쳐 푸치니의 ‘나비 부인’ 마지막 장면으로 마무리됐다. 듣기 좋고 보기 좋은 대목을 골라 친절한 안내를 곁들였다.

한 달에 한 번이지만 반가운 얼굴들을 보고 클래식 선율에 감동하고 그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 시간이 정말 좋다. 파리의 감동은 파리에서만 가능하듯이 녹향에서 만난 음악과 사람과의 교감은 녹향에서만 복원된다. 그래서 녹향이란 공간이 소중하다.

한때 녹향은 양주동, 유치환, 이중섭, 최정희, 양명문 등 당대 최고의 예술인들이 예술적 영감을 키우던 문화의 산실이었다. 지금 초로를 넘어선 이들에겐, 젊은시절 한두 번 안 가본 적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문화공간이었다. 그러나 이젠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다. 녹향을 살리기 위한 노력도 상당히 있었다. 대구시와 중구청, 영남일보에서도 관심과 후원을 보내주었다. 대구·경북의 대표적인 음악가들이 마음을 모아 ‘마에스트로, 녹향에 가다’ ‘아티스트, 녹향에 가다’라는 행사도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무엇이 문제인가?

사람들이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취향이 크게 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사람들 마음에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사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삶의 물질적·정신적 여유를 위해서라고 한다. 좋다. 물질적 여유는 그렇게 해서 올지 모른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는 일부러 내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 것 같다. 맘먹고 시간을 내지 않으면 평생 음악 하나 들을 여유도 없는 팍팍한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단 몇 시간, 녹향의 오래된 추억에 앉아 음악처럼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즐길 여유조차 없는 삶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배광호<경북여고 교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