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시간이 움직였다

  • 입력 2011-05-30  |  수정 2011-05-30 07:49  |  발행일 2011-05-30 제23면

오늘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에 대해서 의식하며 살아가는 이는 많지가 않을 것이다. 오늘이 왔듯이 내일이 올 것이란 믿음은 그 무엇보다 굳고 철저하다. 무심히 돌아간 오늘은 읽다만 석간 신문처럼 개켜져서 추억의 방에 든다. 가끔은 정직하게 때론 왜곡된 채로 기억의 물레를 저으며 늙어간다.

최근 그 지나간 오늘에 불씨를 지피는 스페셜행사가 있다. 이름하여 ‘추억의 음악다방전(展)’이란다. 추억이란 말, 음악이란 말, 다방이란 말이 묘하게 묶여 구태의연하면서도 풋풋한 정겨움을 더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 시 쓰는 여자 셋, 그곳에 갔다. 추억전으로 가는 길은 그다지 멀지 않았다. 빗방울이 토닥토닥 창문을 두드렸다. 괜찮았다. 소소한 우스갯말에도 크게 웃었다. 마음은 저마다 그리움에 파종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둠살이 번지는 캠퍼스, 오랜만이었다. 가슴골을 파고드는 밤바람조차도 반가웠다. 계단을 내려가자 귀에 익은 음악이 어슴푸레 마중을 하였다. 그러니까 이삼십년 전으로 시간이 움직이는 거였다. 적잖은 과거의 오늘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시절,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고뇌하던 나와 발랄했던 나 사이를 왕래하는 팝송과 가요가 있었다.

“뭐 드시겠습니까?” “메뉴판이 어딨죠?”

청년이 카운터 쪽에 있는 허름한 벽을 가리켰다. 흰 종이에 검은 글씨의 메뉴판이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선택하라는 거였다. ‘인삼차, 유자차, 대추차, 계란, 연양갱, 커피’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때는 그랬었지. 맞다 맞아. 아스름한 길을 열 듯 통기타의 음율이 나직한 어깨를 흔들었다. 리퀘스트 용지에 코를 박았다. 제목이 도무지 생각이 안 나서 서로의 귀에다 대고 기억나는 소절을 부르면 의기양양 답을 하기도 했다. 어라! 신청곡과 사연이 디스크자키의 저음으로 건너오며, 여민 마음을 풀어내어 곁에 없는 모습들을 불러내었다. 잠시 나를 잊어도 좋았다.

누군가 ‘추억에 기댈 줄 아는 사람은 행복을 아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직선의 길로 바삐 달려만 왔다면, 한번쯤 시간을 옮겨 추억에 젖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다.


김기연(시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