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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아래 진초록 겹쳐 피어난다는 유월.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목숨을 던져 조국을 지킨 분들의 영령을 국민의 이름으로 높이고 보답하자는 것이지 않는가. 일제강점기는 물론 6·25전쟁 이후 세대가 어느새 사회의 중심축을 이루는 시대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조국의 위기를 직접 겪은 앞선 세대에 비해서 호국에 관한 절실함이 덜해진 건 아닐까하는 우려감마저 드는 것이다 .
내 고향 마을엔 6·25전쟁 참전용사였던 퇴역 황 중사님이 있었다. 동네 우물가에 붉은 해당화가 막 벙글기 시작한 어느 해 초여름이었다. 리어카 한 짐으로 황 중사댁 여섯 식구가 이사를 온 것이었다. 그날이 그날인 듯 조용하기만 하던 두메산골에 들어오는 이사야말로 온 동네의 경사였다. 따라서 조무래기들에겐 잔치 못잖은 큰 구경거리임에 틀림이 없었다. 마치 제 사촌이라도 맞이하는 양 마음이 달근작 달아올라 삐그덕거리는 리어카 뒤를 너나없이 졸졸 따르는 거였다.
동네어귀 정자나무를 지나서, 국기게양대를 지나서, 동네 맨 끝집의 문간방에 당도하였다. 어린 눈에도 이삿짐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유독 덜컹대던 부엌도구 몇 개와 이부자리며 옷가지가 고작이었다. 그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 말끔하게 다림질한 군복 한 벌이었다.
김씨만 사는 월촌에 황 중사 댁은 유일한 타성바지였다. 문간방은 어느 하루도 잠잠한 날이 없었다. 황 중사의 음성은 천둥 같았고 또래에 비해 왜소하던 아이들 넷과 황 중사의 아내 월촌댁은 허둥지둥 피신을 하곤 했다. 황 중사는 절규에 가까운 군가를 부르는가 하면, 금방이라도 적지에 나가는 장병들에게 막중한 임무를 지시하듯 무어라 혼잣말을 하곤 했다. 그는 1·4 후퇴를 맞으면서 함께한 전우를 잃었고, 자신은 청력을 잃었다고 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는 전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이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던가. 다시 유월이다. 오늘의 안녕을 위해 그렇게 가신님들을 마음 조아려 되새겨보자.
김기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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