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후추와 소금사이

  • 입력 2011-06-20  |  수정 2011-06-20 07:59  |  발행일 2011-06-20 제23면

마흔과 쉰 살 사이의 십년을 프랑스 사람들은 ‘후추와 소금사이’라 일컫는다고 한다. 이 말은 후추의 검은 색이 소금의 밝은 빛과 드문드문 섞이기 시작하는 머리카락에 빗댄 것이다. 그럴 즈음엔 마음이 성급하고 무자비하기보다는 온유해지며, 삶이 차츰 빛바랜 듯 무미건조해지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생의 여름을 지나 가을이란 말이지 않는가.

마흔과 쉰 살 사이를 지나고 있는 내가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가령 등산을 하다가 잔디가 없는 가묘를 볼 때가 있는데, 전에 없이 생각이 꼬리를 물곤 한다. ‘저쯤이면 참 좋은 곳에 저택을 마련한 걸세.’ 그러다가 금세 생각이 바뀌어 ‘이 좁은 땅에 죽은 사람 집으로 이 난리들이람.’ 한 바퀴 생각이 돌아서 오면 마음 한쪽이 시큼해지는 거였다. 그런가하면 훌쩍 커버린 두 딸을 보면 대견하고 고맙다가, 슬금슬금 쓸쓸해지는 게 아닌가.

그러다가 선천적 철부지함에 용을 쓰며 마음에 철을 들이붓고자하는 나를 만나는 것이다. 뭐 그 철이란 것이 여름옷, 겨울옷처럼 간단히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내면의 트러블은 종종 나를 우울하게 했다.

자주자주 둘레가 어둡고, 누군가를 만나는 게 요긴하지가 않고, 모든 게 심드렁해져서 마음엔 갖은 생각을 퍼담는 우물이 생겼다. 지인들로부터 ‘요즘 왜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그럴 즈음이었다. 글 쓰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내게, 봄 개편으로 라디오방송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그 숱한 생각 가운데 한번도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다. 오랜 망설임 끝에 결정을 하였다. 시를 읽어주고, 시의 이미지를 나누고, 시인을 소개하는 코너이다. 많은 작품을 읽고, 원고를 쓰며, 방송을 하는 일은 ‘후추와 소금사이’ 자의적 우울을 건너는 명약이 되었다.

좀 늦은 나이라고해서 새로운 걸 거부할 이유는 없다. 삶의 채색은 굳이 나이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싶다. 여름이 줄 수 없었던 아름다움이, 풍요로움이 가을이나 겨울에도 충분히 있지 않는가. 생각을 조금 바꾸기만 하여도.


김기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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