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희망을 노래하라

  • 입력 2011-06-24  |  수정 2011-06-24 07:35  |  발행일 2011-06-24 제18면

아버지와 아들이 위험한 사막을 지나고 있었다. 날씨는 뜨겁고 길은 험했다. 아들은 절망 속에서 말했다. “아버지, 저는 힘이 다 빠진데다가 목이 타서 죽을 것 같아요. 더 이상은 못가겠어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희망을 불어넣는다. “용기를 내라. 우선 선조들도 이 고통의 길을 걸어왔단다. 두려운 것은 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용기를 잃는 것이다.” 한참 후 공동묘지를 본 아들이 이제 완전한 절망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저것 보세요. 우리 선조들은 사막 길을 걷다가 도중에 다 죽었잖아요. 우리도 죽고 말 거예요."

아들의 말에 아버지가 희망을 노래했다. “무덤은 실망이 아니라 희망이다. 공동묘지가 있다는 것은 이 근처에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다는 증거야.”

그렇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는 눈과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입이 필요하다. 또 그런 희망의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사람도 필요하다.

유대인의 이야기 가운데 ‘하늘을 나는 말(馬)’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왕의 노여움을 사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일년 여유를 주신다면 임금님이 가장 애지중지하시는 말에게 하늘을 날도록 가르쳐 보이겠습니다. 일년이 지나가도 하늘을 날지 못한다면 그때 가서 저를 죽여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 탄원이 받아들여져서 왕은 가장 사랑하는 말이 하늘을 날지 못한다면 그를 사형에 처하겠다고 선포했다. 동료 죄수들이 “말이 어떻게 하늘을 난단 말인가”하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년 이내에 국왕이 죽을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그 말이 죽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일년 이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나? 일년 뒤에는 말이 정말 날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거든.”

인간을 ‘호모 에스페란스(Homo Esperans)’라고 한다. 호모는 인간이고, 에스페란스는 희망이라는 말이다. 즉 인간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다. 이 시대의 문화 속에는 ‘절망의 문화’가 많다. 우리가 이것을 ‘희망의 문화’로 한 번 바꾸어 보자.


송기섭<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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