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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삶을 찻잔과 차와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이라고 할까. 탯줄의 끈끈한 길을 따라서 시작된 삶은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 또는 제 식의 다양한 길을 만들며 둥글어진다. 어떤 길은 쉬이 잊힌 채 새 길로 들기도 하지만, 어떤 길은 마음에 돋움 길로 각인되어 찻잔의 차가 다 닳도록 잊히지 않기도 한다. 그걸 추억이라 하나. 누구나가 그렇듯 내게도 그런 추억의 길이 있다.
내 고향은 두메산골이다. 사람소리보다 산새소리가 더 왁자하다. 산의 웅덩이같은 마을은 산이 인도한 길을 따라서 각자의 집으로 혹은 저마다의 길을 끌며 먼 타향으로 떠나거나 돌아오곤 했다. 내가 길을 끌며 떠난 첫 타향살이는 20리 읍내였다. 여중 1학년, 학교 근처에 단칸살이가 시작되었다. 처음 사용하는 연탄불 힘들었다. 처음 짓는 밥 힘들었다. 한번도 떠나본 적 없는 집 생각 힘들었다. 새소리 없는 도시의 밤 힘들었다. 나의 자취생활은 순탄치가 못했다. 형편이 어려워 통학하는 아이들을 따라서 일주일이면 사오일을 왕래하였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타이르다가 꾸중하다가를 반복하였지만 그해가 다가도록 변한 건 없었다. 가을 들어 해가 부쩍 짧아진 탓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절반은 어둠 밭이었다. 산 아래 마을로 들면서 제각기 안녕하며 들어갔다. 아랫마을 어귀에서 남은 친구마저 가고 나면 칠흑의 길 위엔 고양이 눈알같은 나만 남아서 걸음이 후들 거렸다. 그럴 쯤이었다. 야트막한 길의 허리에 어른대는 모습이 있었다.
“여이가?”“예!”
아버지였다. 소리 내어 웃으시지도 않으셨거니와 육남매를 품에 한번 안기조차 않았던 분이셨다. 그러나 막내인 내겐 예외였다. 아니 내가 둥지를 찾는 아기 새마냥 그 품을 파고들었던 거다. 한 손에 가방을 받아들고 한 손으로 시린 내손을 큰 손바닥으로 감싸주셨다. “이눔아, 와 이 고생이고?” 올지 아니 올지도 모르는 나를 향한 아버지의 마중을 그땐 몰랐다. 달이 뜨면 환해서 좋았고, 그믐이면 풀벌레며 새소리가 가까워 좋았던 그길. 산바람 달려들어 단발머리 흥겹게 찰랑대던 길. 이제 그 길도, 아버지도 돌아가고 없는 내 마음의 돋움 길.
그댄 어떤 돋움 길에서 그렁대는 마음 쉬어가나요?
김기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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