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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일구<김천시향 상임지휘자> |
‘문화산책’ 집필을 처음 제안받고 ‘문화란 무엇일까’를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너무나 범위가 넓은 주제임에 분명하다. 모든 말의 앞뒤에 문화라는 말을 덧붙이면 수없는 문화영역이 나온다.
인문학에 처음 눈을 뜬 중학생 무렵, 내게 주어진 화두는 ‘선악’이라는 문제였다. 선과 악이 어떤 것인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판단기준은 무엇인지를 놓고 고민했다. 당시 필자가 얻은 해답은 ‘양심’이었던 듯하다. 그러나 훗날 양심도 교육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또다른 주제와 질문으로 고민이 옮겨가기도 했다. 왜냐하면 살인이라는 것이 평상시나 일반적 관심에서는 악이지만, 특정한 지역이나 시간 속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전쟁 속에서 살인의 행위가 ‘애국’이라는 방패 속에 우물쭈물 숨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선진 문화’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선진국 문화가 모범적이라는 뜻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문득 몇 해 전 경험이 떠오른다. 몇년 전 대구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콜롬비아 순회공연을 다녀왔다. 연주를 위해 우리는 네 번의 비행기를 갈아타고, 거의 이틀을 꼬박 비행기에 머물렀다.
내게 콜롬비아의 첫 인상은 가난이었다. 건물마다 총을 멘 군인이 있고, 치안마저 불안한 마약의 나라였다. 연주회 리허설을 위해 극장에 갔는데, 도대체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기가 막혔다. 우리는 두 개의 서곡과 두 개의 교향곡을 준비했는데, 무척 무거운 프로그램이었다. 이 길고 어려운 프로그램에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전혀 동요하지 않고 보내주는 뜨거운 박수에 연주회 내내 놀랐다. 우리가 잘 사니까 관객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반응수준이 우리보다 못하리라 생각한 나의 오만에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더구나 연주가 끝나고 나에게 찾아왔던,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여인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연주를 극찬했던 그녀는 나에게 모차르트의 대관식 미사 중 퀴리에를 끝까지 불러주었다. 그녀의 너무나도 진지한 태도에 조용히 끝까지 들었다. 좋은 클래식 문화를 전달하려고 갔다가 한 콜롬비아 맹인 여인의 순박하고 고귀한 문화를 배우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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