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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이 이따금 내게 묻는다. ‘연극’ 그걸 왜하느냐고. 그럼 그냥 웃는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연극, 그거해서 돈 많이 벌었냐’고 묻는다. 처음에는 너무 허탈하고 기가 막혀 분노마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연극을 하는 이유는 뭘까. 나에게 연극은 삭막한 내 인생에 유기체적 신선함, 그 자체다. 내 삶의 방부제인 셈이다.
병원개원 때 선물로 받은 소사나무 분재가 있었다. 원목수령이 200년 넘는, 눈을 약간 흐리게 뜨고 보면 강둑에 흐드러진 느티나무같은 고고함마저 묻어나는 멋있는 분재였다. 개원 초기의 경제적·심리적 압박감에 시달리던 내게 그 분재는 계절의 오고감을 보여줬다. 99㎡ 크기의 병원 진료실 안에서 턱없이 협소해져버린 현실에 몰두해 무디어져가던 내 삶의 촉수에 던지는 푸르디 푸른 충격이었다. 식물도 동적 존재라는 사실이 내겐 경이로웠다.
그러다 그 분재에 문제가 생겼다. 겨울 한중간인 1월에도 잎이 푸르고, 봄이 와서야 잎을 떨구고, 늦여름이 되어서야 새잎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실내에만 있어서 그런가 싶어 볕드는 창가에 두고 영양제도 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분재는 죽고 말았다. 시간이 지난 그 분재를 선물한 분께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 조심스레 물었더니 ‘분갈이를 안 해줘서 그런것’이라고 했다.
그랬다. 식물도 자기가 뿌리내린 땅의 기운이 다하면 죽는다. 새로운 흙이 주는 신선함과 영양을 받지 못하면 계절의 변화에 반응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서서히 죽어간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똑같은 일상의 숨 막히는 반복 속에 우리를 내버려둔다면 삶의 매너리즘이라는 것에 마취되어 아무런 반응도, 어떤 움직임도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그 순간 삶은 멈추는 것이다. ‘새로움’이라는 분갈이를 하지 않으면 다양한 삶이 주는 너무나 많은 느낌과 아름다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배부른 소리한다”며 핀잔을 주는 순간, 우리 삶은 정체되고 우리의 감각은 그 느낌을 잃어간다. 문화적인 삶은 공연을 예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그 순간부터 내 일상의 무료한 잔가지에 잎이 돋기 시작할 것이다.
박세호<극장‘마카’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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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연극은 내 삶의 방부제](https://www.yeongnam.com/mnt/file/201107/20110708.01018073431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