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오스트리아 그라츠

  • 입력 2011-07-19  |  수정 2011-07-27 17:49  |  발행일 2011-07-19 제20면

1997년 쯤의 일이었던 것 같다. 독일을 거쳐 오스트리아의 그라츠라는 도시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라츠에서 6년이 지난 후 그라츠대학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그라츠에 국립대학 음대는 하나밖에 없으니,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은 모두가 다 선의의 경쟁자들이었다. 지휘자 선발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서류심사로 다섯명을 선발하고, 다섯명과 인터뷰를 통해 단원과의 언어소통 능력을 시험했다. 즉, 선발된 다섯명은 주어진 과제곡을 가지고 그라츠대학오케스트라 단원들과 30분씩 음악적 언어로 소통했던 것.

연주를 마치고 단원들은 회의와 토론을 거친 후 투표를 했다. 나는 운좋게도 그들을 위한 상임지휘자로 발탁이 됐다. 교수나 음악계의 저명한 인사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단도 없었다. 단지 그들이 뽑았다. 단원 중에는 한명의 아시안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발표를 하였고 축하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있을 법한 일인가?

그들의 문화일까? 파워일까? 나는 종신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었다. 그들은 프로가 아니었으나 프로 이상이었다. 지휘자 선정과정의 단순 투명성, 아무렇지도 않게 묵묵히 모든 진행을 해나가는 모습 속에서 나는 놀라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문화의 습성은 귀국 후 나를 상당기간 곤혹스럽게 하곤 했다. 모든 음악 유학생들이 느끼는 것이라고 본다. 지금도 여러 생각을 하게끔 한다. 나는 그들과 거의 같은 느낌으로 의자와 보면대를 옮겼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의 똑같은 행동은 상당한 제재와 의혹을 받았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그라츠에서 ‘내가 지휘자, 곧 마에스트로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을 때는 몇가지 경우다. 연습 중 단원들의 잘못이나 개선점을 얘기해줄 때, 아니면 음악회가 끝나고 나에게 사인을 요구하던 노인분들, 그리고 음악회가 끝난 후 예약된 레스토랑에서 지휘자가 앉을 때까지 앉지 않았던,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들의 예의를 느꼈을 때다. 단원들과 인사로 나누는 입맞춤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지 않았던 그들의 예의가 지금도 나를 추억으로 이끈다.


이일구<김천시향 상임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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