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와인과 연극

  • 박세호 <극장 ‘마카’ 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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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7-29  |  수정 2011-07-31 17:38  |  발행일 2011-07-29 제18면

몇 년 전 공연을 보러온 지인이 내게 물었다. 연극을 정의한다면 뭐라고 할거냐고. 연극은 와인같다고 말했다. 그 지인을 와인 모임에서 만난 이유도 있겠지만 나는 참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와인이라는게 공장에서 찍어내는 소주나 맥주와는 달리 발효라는 천연 반응을 통해 자연스레 만들어지고, 떼루아(포도주가 만들어지는 모든 환경, 토양과 기후 등)라 일컫는 환경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그 맛과 풍미가 최고에 올라 그때를 지나면 와인도 노쇠하는데, 실제로 와인은 병 오픈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참으로 오묘하지만 주변 환경에 아주 민감한 것이 바로 와인의 맛이다. 처음과 끝이 전혀 다른 맛, 같은 병에서 따른 와인인데도 다른 맛을 풍길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태어나고 성숙하고 쇠퇴한다.

같은 연극을 여러 번 보는 일이 많은 나는, 볼 때마다 그 연극의 맛과 느낌이 다르다는걸 느낀다. 첫 공연에선 살지 않았던 세세한 감정의 변화와 극적 고조감들이 횟수를 더해 감에 따라 점점 더 도드라져 보이고 심화되는걸 보게 된다. 마치 와인이 익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날 그날 배우들의 감정과 환경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게 소극장 연극이라서, 휴대폰 진동소리마저 공연에 방해되기 때문에 전원을 꺼주기를 신신당부하고, 극이 시작하면 관객을 들여보내거나 나오게 하는 것을 막는다.

공연 예절을 떠나 소극장 연극은 시작과 동시에 관객 또한 그 연극을 만들어 가는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언제보아도 숨 막힐 정도로 똑같은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그냥 아무데서나 마셔도 맛이 똑같은 맥주와 소주 같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냄새, 즉 불완전한 존재로서 완전함을 추구해 나가는 입체감이 없기 때문이다.

소극장 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바로 그날 그 시간에 있음으로써 함께 만들어지고 그 농익은 감동을 함께 나누어 갖는 것이다. 이것이 연극이 와인같은 이유다.

박세호 <극장 ‘마카’ 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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