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풍요 속 빈곤

  • 입력 2011-08-11  |  수정 2011-08-11 08:10  |  발행일 2011-08-11 제19면


우리는 때로 아무런 목적 없이, 서로가 부담 되지 않는 편안한 누군가와 커피 한 잔 혹은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하려고, 연락처 리스트를 쭈욱 봤는데, 마땅히 전화할 사람이 없더라.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참 서글프더라’ ‘내가 잘못 살아왔나’라는 생각을 한 번 쯤은 해보고 또 그런 하소연을 들어봤을 것이다. 나의 휴대폰 연락처에도 1천개 넘는 전화번호가 있고, 페이스 북·카카오톡 등 메신저의 연락처까지 하면 그 수는 더 된다.

그런데, 나 역시 무심히 전화를 걸어도 될 사람은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 연락처 리스트의 ‘ㄱ’부터 ‘ㅎ’까지를 다 살펴도 ‘아, 이 사람한테 전화하면 되겠다’는 사람이 없어 전화기를 닫아버린 적이 있다. 그야말로 풍요 속 빈곤이다.

어떤 부류는 공통의 소재가 일이니 자연스레 일의 연속이 되고,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한 후라 배우자며 아이들 이야기에 여념이 없어, 같이 앉아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어색한 자리가 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내가 전화를 하는 것이 부담을 줄 수도 있겠다 싶어 차라리 ‘그냥 혼자 쉬자’라고 마음을 닫아버리게 되곤 한다.

얼마 전 오랜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냥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고….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만나 요즘말로 절친이 된 친구 중 한 명이다. 무엇이든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눠주고, 밥 잘 챙겨먹고 건강 조심하라며 때론 엄마처럼, 때론 이성 친구처럼 지금까지도 나를 챙겨주는 친구.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일에 빠져 전화가 와도 늘 바쁘다고 하고 연락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왔는데, 오랜 친구에게서 받은 이 한 통의 전화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 같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참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살아간다. 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 어떤 존재인지 한번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누군가가 문득 나를 떠올려 연락을 해왔을 때, 나는 어떻게 맞아주고 있는지….

누군가의 인식 속에 소중한 사람으로 남아있고, 문득 나를 떠올려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임에도 귀찮아하거나 번거로워하지는 않았는지.


박정숙 <대구오페라하우스 공연기획팀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