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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엄청난 폭우가 내렸다는 소식이 잦아들 무렵, 대구에도 제법 큰 소나기가 내렸다. 그 다음날 극단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극장에 물이 무릎까지 찼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실망감이 가득했고, 나는 망연했다. 일 년이면 몇 번이고 물이 차는 극장. 그때마다 썩어 무너져 내리는 무대를 다시 깔아야 했다. 반복된 물난리에 대표나 나나 지칠대로 지친 상태다. 이번엔 정말 서글퍼졌다. 안그래도 눅눅한 지하의 공연장, 옅은 곰팡내마저 풍기는 극장에 무릎까지 차오른 물이라니….
통계에 의하면 20∼30대가 선호하는 공연은 뮤지컬과 콘서트였고, 연극은 그 다음이었다. 관객 증가 비율 또한 다르지 않았다. 연극인 월평균 소득 23만원. 내가 지켜본 그들이 꼭 그랬다. 2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하지만, 절박한 열정 하나로 버티는 그들에겐 공연장이란 삶의 터전이 아닌가? 그런 그들의 얼굴이 이번엔 굳어졌다. 나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대학에서 연극공연만 하다가 처음 기성극단에 참여할 기회가 대학 2학년 때 찾아왔다. 한 달 넘게 이어지는 힘겨운 연습이었는데 식사는 늘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먹는 거였다. 그때 처음 연극과 가난이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은 힘이 넘치고 눈빛은 살아있었다. 내가 아는 한 어느 누구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게스트로 참여한 20대 초반인 내가 지쳤다.
저 열정의 뿌리는 무엇일까. 정말 대단한 에너지를 가진 분들이다 싶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느낌은 25년을 지나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그런 그들의 얼굴이 일순 어두워졌다. 점심시간에 맞춰 찾아온 대표와 식사를 하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무릎까지 잠긴 우리의 노고와 정성이 아쉬워서도 아니고, 다시 시작해야 할 용기가 부족해서도 아니었다.
창밖은 염천의 거리가 내뱉는 열기가 가득한데 우리는 뜨거운 국을 마시며 말이 없었다.
박세호 <치과의사·극장 ‘마카’ 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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