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백지 위에 그려보는 연습

  • 입력 2011-08-16  |  수정 2011-08-16 07:52  |  발행일 2011-08-16 제20면
[문화산책] 백지 위에 그려보는 연습


필자는 일곱살무렵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다. 나의 음악수업은 요즘 아이들과 조금 다르게 진행됐던 것 같다. 레슨을 받으러 선생님을 찾아가면 지금도 기억나는 참 많은 말씀을 해주곤 했다. 나는 그 말씀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와 백지 위에 그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 수업이 열릴 때까지 며칠 동안 나만의 그림을 그려나가곤 했다.

다시 선생님과 만나 내가 다시 그린 그림을 놓고 수업을 한다. 잘 된 것보다는 주로 잘못 그린 나의 그림을 수정해 주었다. 나는 또 다시 선생님을 떠나 집으로 돌아와 다시 나의 상상력으로 더 나은 그림을 그려보곤 했다. 비록 또 다시 수정될 그림이었지만.

요즘 음악수업은 어떠할까. 학생들에게 음악과제를 내주면 그들은 그 순간 그 음악에 관한 거의 많은, 정확한 정보를 그 자리에서 아주 손쉽게 얻는다. 참 편리하고, 속도는 광속도에 이를 정도다. 아마도 나같으면 도서관에서 먼저 악보를 빌려서 피아노 앞에 앉아 천천히 읽어보아야 하며, 시간도 꽤 걸려야 할 것이다.

나의 방법과 요즘 학생들의 방법은 속도 면에서 보면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상당히 빠르고 높은 수준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기 때문에 빛나는 성과도 빨리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끔 놀라울 때가 있다. 학생들이 정보를 정확하게 얻을 수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러면 상황이 완전 새롭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방법을 찾지 않는 것인지,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인지 너무나 힘들어한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갑갑해 하는 것이다. 좀 느려서 그렇지 천천히 상상의 나래를 펴면 좋은 방법이 있는데 말이다.

잠깐만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내려놓고 나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을 백지 위에 천천히 그려보면 어떨까. ‘그 사이에 급한 전화가 오면 어떡하지’하는 조급증은 잠시 내려놓고 말이다. 무슨 큰 일이 생길 것 같은, 급박해져버린 우리의 일상을 잠시 뒤로 하고, 멍하니 하얗게 보이는 도화지에 천천히 상상의 그림을 나만의 방법으로 가장 나답게 그려보는 것은 너무나 늦고 진부한 현대인의 모습일까.

이일구 <김천시향 상임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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