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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란 말 그대로 ‘좋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양심이라는 말을 들으면, 오스트리아 유학시절에 겪은 작은 에피소드가 동시에 떠올랐다. 작은 일화에 불과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양심을 내게 각인시켜준 커다란 경험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유학 중일 때다. 후배 유학생이 우리집에 놀러오기로 했다. 그는 택시를 이용해 우리집을 방문했다. 나와 집사람은 반갑게 맞고, 우린 함께 저녁을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다음날 그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학교 수업준비를 하려다가 악기가 없어진 것을 알고 넋을 잃었다. 우리집을 방문할 때 택시에 악기를 두고 내린 것을 깨닫고 당황한 나머지 전화를 했다. 어떡해야 할까. 그와 우리는 고민하다 택시 회사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택시 회사에선 어제부터 전화를 기다린 것이었다. 어제의 기사가 직접 악기를 가져다 주었다.
그와 우리는 너무나 기뻤다.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데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악기여서 이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생명을 잃는 기분이었다. 아! 이런 것이 선진국의 파워구나 하며 부러워했다.
그런데 며칠전 같이 오페라 연습을 하던 선생님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들은 얘기다. 그는 수년간 독일의 극장에서 열심히 노래해서 번 돈을 부모님께 드리려고 꼬박 모아 작은 가방 속에 넣어가지고 귀국을 했다고 한다. 인천 공항에서 큰 가방들에 신경을 많이 쓰는 바람에 그만 그 중요한 작은 가방을 깜박 잊어버리고 집으로 갔다고 한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런데 그 선생님한테 낯선 사람의 전화가 왔다. 그 사람은 작은 가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을 만나 작은 가방을 돌려받고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다시 십수년 전 오스트리아의 경험이 떠올랐다. 그 시절 부러워했던 선진국의 파워를 우리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감개가 무량했다. 평범한 우리 사회 구성원 하나가 갖는 좋은 마음은 우리 사회의 수준을 측량할 수 있는 척도이고, 그 주변과 둘레를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는 물의 파장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일구 <김천시향 상임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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