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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구월이 되면 몇 해 전 독일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한 달가량 그쪽 병원을 방문하는 형식이었는데, 독일이라는 나라가 학문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내겐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스무 살 이후 나에겐 독일이란 전혜린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언제나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알프스자락의 뮌헨, 독일의 몽마르트르라 일컬어지는 슈바빙 레오폴드가 인근의 식당 제에로오제에서 흰 소시지와 커피로 식사를 마친 뒤 맥주와 함께 시의 밤, 화가의 밤을 보내고 노란 가스등이 켜진 안개가 자욱한 슈바빙을 휘적휘적 걸어 집으로 돌아갔을 그녀를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녀가 가진 고뇌와 풍요하기만한 절망을 오랫동안 동경해왔다.
그 거리에 내가 서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포염 속에 다행히 살아남은 슈바빙 구시가지에서도 가스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영국공원으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거리는 내가 그녀를 추억하기에 충분한 캔버스와 같았다. 한쪽에선 옥토버 페스트의 광란이, 한 쪽에선 옛 영화가 사라진, 열정에 불탄 감정의 찌꺼기만이 스러져가는 거리를 아쉽게 거닐다 돌아왔다.
추억하는 것이 어울리는 계절이 온다. 과거란 쇠락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것이다. 그 아름다운 추억이 현실과 맞지 않더라도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가슴 뜨거운 시도다. 감상의 터치로 투박스레 그려진 동경일지라도 그것이 진실이고 진심일 때, 그리고 그 동경이 현실의 거리로 다가서고, 드디어 그 가운데 서게 될 때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내가 거기 있게 되는 것이다.
삶이 갑작스레 부풀어 올라 무게를 못이긴 육신이 고개를 떨군 채 ‘내 안의 나’를 만나는 것이다. 열린 동공으로 과거의 시간들이 천천히 지나는 그 모든 풍경, 한 모퉁이에 내가 서있다.
구월은 추억하기에 너무 아름다운 계절이다.
박세호<치과의사·극장 ‘마카’ 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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