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아름다움을 존중함

  • 입력 2011-09-08  |  수정 2011-09-08 08:05  |  발행일 2011-09-08 제19면
[문화산책] 아름다움을 존중함


가끔 음악 마니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 중 어떤 이는 “음악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이 오히려 음악을 잘 듣는 일을 방해한다”면서, 그 이유가 “음악적 지식이 그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게 하여 음악을 듣고 경험하는 순간 자신이 느끼게 될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을 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러한 지식이 자신과 음악 사이에 끌어들이고 싶은 환상을 방해하기 때문은 아닐까. 어떤 음악가가 왜 이러한 작품을 만들었고, 이것은 어떻게 생겼는지, 구체적으로 무엇이 우리에게 이런 아름다움을 주는지보다는, 오히려 음악이라는 거품이 가득 찬 욕실 안에서 몽롱하게 취하는 만족감을 더 바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술자체를 감상할 시간을 내기 힘든 현대인에게 그저 음악은 우리가 무언가를 하는 동안 주위공간을 채워주는 고마운 도구일 수도 있고, 행사에서 순서들 사이의 어정쩡함을 채워주는 훌륭한 친구이며, 가끔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여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는 데 도움을 주는 장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음악의 내용에 집중하기보다는 음향의 덩어리들만을 듣고 그 분위기에 감동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게 되면 그럴 수가 없다. 나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을 취사선택하지 않고, 아름다움 그 자체를 존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술적 경험이란 내 마음을 애써 조정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힘든 과정을 거친 후 어느 순간, 본래부터 그랬던 것을 마침내 터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음이 잉태되고 그것이 아름답게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귀로 지켜듣는 성실함이 곧 예술작품을 완성한 창조의 순간에 작가가 느꼈던 그 아름다움을 함께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빠른 변화에 몸을 맡기고 바쁘게 사는 우리에게는 금방 좋아지게 되고 그 시간만큼이나 금방 싫증나게 되는 쉬운 것보다, 이렇게 긴 앎의 과정을 요구하는 예술작품이 더 좋은 친구가 되리라. 익숙해지기 위해 힘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가벼운 즐거움이 아니라 생활의 큰 기쁨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황원구 <수성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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