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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일하다 보면 예술적 수준만으로 작품을 올리지 못할 때가 많다. 대중성이 있으면 예술성이 떨어지고, 예술성이 있으면 대중성이 없는 예가 많기 때문에 극장은 어느 정도의 예술성을 담보로 양 끝단 사이의 어떤 지점에서 극장의 이미지까지 고려한 후 공연물을 결정한다. 그리고 입장권을 시장에 내놓기 전에 늘 하는 작업이 있다. 어떻게 이 작품을 잘 포장하여 홍보하고 어떤 방법으로 마케팅할 것인가를 고민하여 광고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과 그 판로를 결정한다.
값어치 있는 미술품을 보면 그것이 기능적으로 쓰이는 것이라 하더라도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없고 하나같이 장인정신이 빚은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최고의 아름다움을 위해 만들었을 뿐이지 잘 팔릴까를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예술품의 생산이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처럼 대중의 경향이 무엇인가 살필 필요도, 그들의 기호를 읽을 필요도 없었다. 적어도 그 생산자에게는 자신이 만드는 물건이 돈으로 환산해 팔 제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생산자의 태도를 기준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구분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산자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의 차이는 그의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것은 그 생산자를 품고 있던 공동체에도 똑같은 대가를 치르게 한다.
임금님께 진상할 물건을 만들 듯이 대중에게 내놓을 물건을 만들고 인정받겠다는 생각은 지나친 낭만이라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자세로 작품을 내놓을 수만 있다면 그 생산자와 그가 속한 공동체가 얼마 동안의 가난을 감수해야겠지만, 수요자들이 그러한 작품에 익숙해지게 되는 날, 그 수요자들은 분명히 그를 존경할 것이고 그 공동체 또한 다른 공동체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최고의 예술품을 만들기 위한 생산자 본연의 자세를 유지해 간다면, 그리고 이러한 수요를 만들기 위한 홍보와 마케팅에 노력한다면, 그 과정을 견디는 것이 어렵겠지만 대중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날은 분명히 올 것이다.
황원구 <수성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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