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유목민과 정착민

  • 입력 2011-09-29  |  수정 2011-09-29 07:51  |  발행일 2011-09-29 제19면
[문화산책] 유목민과 정착민


유목민들은 정착생활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새로운 풀들을 찾아야 그들의 생업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먼 옛날 우리 인간들이 꼭 그러했다. 어느 한 곳에서 자리잡고 그곳에 서식하는 먹잇감을 모두 소비하고 나면 삶을 위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던 것이다.

왜 그렇게 살았을까. 인간은 정착생활을 하기 전까지 자기가 먹을 것을 스스로 재배하고 사육할 지혜를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유명한 공연단체의 투어공연을 보면서 ‘이 사람들 풀 뜯어먹으러 왔구나’라는, 웃긴 생각을 한다. 그들의 목표는 자신들의 공연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며 그것은 곧 매표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단체의 기획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마케팅 마인드는 어느 도시, 어느 극장에 가면 매표가 잘 될 것인가다. 공연에 대한 붐업을 위해 대중매체를 통해 바람몰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공연이 끝나면 그들은 마치 유목민처럼 또 다른 곳으로 풀을 뜯으러 간다.

만약 같은 방법으로 극장이 기획공연을 하면 어떨까. 극장이 발이 달려서 돌아다닐 수 없으니 일정한 지역의 풀을 계속 뜯어야 할 것은 자명한 일인데, 계속 대중매체에 홍보할 것인가. 무대공연을 보러올 사람들의 규모는 일정한데, 매달 공연을 올릴 수 있을까.

극장은 기획공연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마케팅 대상을 세분화하며 선별적인 홍보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래도 매표가 부진할 것 같으면 학교, 기업체와 제휴하기까지 한다. 이 정도까지 가자면 기획자들이 얼마나 성실해야 할지 극장에서 일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보면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극장의 재무구조는 특별히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장담한다. 왜냐하면 조금 더 나은 판매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정착민이 유목민과 똑같은 방법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지역을 한 치도 벗어날 가능성이 없는 공연장과 연주단체가 그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미 있는 것에만 기대지 않고 장래를 위해 기르는 것이 아닐까.

황원구 <수성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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