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이매와 초랭이의 꿈

  • 입력 2011-10-03  |  수정 2011-10-03 08:03  |  발행일 2011-10-03 제19면
[문화산책] 이매와 초랭이의 꿈


지금 안동에서는 국제탈춤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아시다시피 이매와 초랭이는 ‘하회별신굿탈놀이’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고려 중엽 혹은 말엽부터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에서 상민들에 의해서 연희되어온 탈놀이라고 한다. 그 시대는 묘청의 난, 무신정변, 몽고의 침입 등 전쟁과 환란으로 백성들의 삶이 그야말로 십실구공(十室九空)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피폐하고 궁핍한 시기였다.

등장하는 인물은 각각 특정한 계층을 상징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징성은 오늘날과 비유해 보더라도 별반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예를 들면 속은 부패와 부정으로 가득 찼으면서도 위엄과 체통만을 중시하는 양반은 정치가와 관료의 상징이고, 설익은 지식을 숨기며 헛된 자존심만 내세우는 선비는 지식인을, 백성들의 교화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여색만 밝히는 중은 타락한 종교인을, 돈 되는 일에만 혈안이 된 백정(고려시대의 백정은 천민이 아님)은 재벌기업을 빗대고 있다고 해도 과히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지배계층의 억압과 멸시에 나름대로 대처해가며 살아가는 대표적인 피지배층 인물이 바로 이매와 초랭이다. 초랭이는 영리하고 재바른 사내로 제법 꾀도 부리고 타협도 하면서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약빠리고, 이매는 몸놀림도 둔하고 말도 어눌하게 하지만 험난하고 팍팍한 세상을 순박하게 살아가는 어리보기이다. 둘 다 살아가는 방법은 다르지만 우리 서민층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탈놀이를 보면 등장인물들은 모두 양반·선비마당, 파계승마당, 백정마당 등 각자가 주인공이 되는 자신의 마당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독 이매와 초랭이는 자신들의 이름으로 된 마당이 없이 그저 이 마당 저 마당에 보조인물로 등장한다. 이 또한 시대 혹은 세상의 주인이 되지 못한 그들의 보잘 것 없는 신세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쯤에나 그들의 이름으로 된 마당이 열리고, 그래서 이매의 작은 바람과 초랭이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올 것인가.

박희채 <소설가·안동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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