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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 아니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다.
거만의 부를 가진 재벌도, 생사여탈의 세도를 가진 권력가도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이 먹고 마시는 맛있는 음식은 어느 농부와 어부의 힘겨운 땀으로 일구어낸 소출물일 터이고, 그들이 입고 있는 좋은 옷과 안락한 집도 어느 근로자 혹은 노동자의 고단한 노동의 결과물일 것이다. 즉 그들이 일상에서 행하는 모든 생활과 향유하는 모든 문화적 활동 등 어느 것 하나 남의 덕을 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요즘 나름대로 부와 권력을 가졌다는 일부 사람들을 보면 타인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그들이 잘 된 것은 오로지 ‘자기의 덕’이고, 뭔가 못마땅한 점이 있으면 그건 모조리 ‘남의 탓’으로 돌리며 자신보다 가지지 못하거나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무시하기 일쑤고 나아가 핍박까지 하려 든다.
그러면서 보다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권력을 차지하기에 혈안이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있으며, 심지어는 모든 사람에게 공명정대해야할 법과 제도마저도 그들의 입맛에 맞게 이현령비현령식 재단을 하고 그들의 치부와 득세에 유리하도록 조령모개로 고치려 하고 있다. 한 마디로 그들에겐 ‘남의 덕을 아는’ 배려의 마음과 ‘자신을 탓할 줄 아는’ 청렴의 정신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선 초기의 정승 맹사성은 비가 줄줄 새는 누옥에 살면서도 그보다 못한 집에서 사는 백성들을 걱정하였고,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예덕선생전’에서 당시 반상의 신분격차가 엄격했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의 똥을 푸는 사람을 천하다 여기지 않고 그를 ‘더러운 상일로 높은 덕을 가리고 숨어 사는 사람’이라 하며 존중하였다고 하는데, 반상이 없어진 오늘날 오히려 가진 자의 못가진 자에 대한 차별과 무시는 더 심해진 듯한 느낌이 든다.
제발 좀 이제는 ‘내가 덕을 보기 위한 남의 탓’을 하지 말고 ‘남에게 덕이 되지 못하는 내 탓’을 했으면 좋겠다.
사람은 남의 덕이 없이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니까.
박희채 <소설가·안동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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