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 입력 2011-11-01  |  수정 2011-11-01 08:06  |  발행일 2011-11-01 제20면
[문화산책]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미국에 잠시 머물 때의 일이다. 초등학생 아들은 낯선 환경에 힘들어했지만, 다행히 합주시간을 좋아했고 몇 달 후 공연을 하게 됐다. 공연 며칠 전, ‘정장 차림, 6시30분, 학교강당…’이라고 적힌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아들은 6시30분보다 일찍 가야한다고 했지만 나는 “6시30분에 오라고 했으니 틀림없이 공연은 7시에 할거야”라며 아들을 다독였다. 학교운동장에 차를 세우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동차가 꽉 찬 운동장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조용했다. 뭔가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강당으로 뛰어가 문을 여는 순간, 학생들이 무대의 계단을 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계는 정확히 6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을 가로질러 무대로 뛰어가기에는 너무 늦은 순간이었다. 아들은 그렁그렁 눈물 맺힌 눈으로 공연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연습한 아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 미국 선생님들에게 구겨진 체면, 자책감 등으로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풀 죽어 말없이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보통 때 시간약속이 ‘칼’인 내가 6시30분에 오라고 했는데, 왜 7시에 공연을 한다고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나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원망스러웠다. 소풍이나 수학여행 같은 중요한 학교 행사가 있는 날에 선생님이 모이라고 한 시간에 가서 지겹도록 기다리곤 하였다. 여러 번 반복된 학습효과로 내 나름 몇 시에 오라고 하면 몇 시에 시작하겠구나하고 계산을 하였던 것이다.

감히 선생님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코리안 타임을 완전히, 깨끗이 없앨 수 있는 분은 바로 초등학교 선생님들이라고. 현장학습을 떠나는 시각을 확실하게 공고한 후 정시에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자. 늦은 몇 명을 위하여 시간을 지킨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은 ‘너그러움’도 ‘배려’도 아니라는 것을 따끔하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분은 학교 선생님이다. 아들의 공연을 망친 아픈 기억이 미국에서 ‘절대 시간 엄수’를 확실하게 가르쳐 준 것처럼, 중요한 행사를 놓친 학생들에게 평생 ‘코리안 타임’이라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정경실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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