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먼 훗날 따뜻한 창가에서

  • 입력 2011-11-08  |  수정 2011-11-08 09:03  |  발행일 2011-11-08 제20면

‘당신은 왜 멀쩡한 천을 조각조각 잘랐다가 다시 붙이느냐’는 남편의 질문에 미소를 머금는다. 예전에 천이 귀했던 시절, 자투리 천들을 모아두었다가 조각보도 만들고 이불도 만들었던 ‘퀼팅’은 고요한 밤에 생각을 정리하면서 혼자 할 수도 있고, 여럿이 모여 온갖 수다를 떨며 할 수도 있어서 난 좋아한다. 하면 할수록 퀼팅은 우리 삶의 과정과 닮았다.

첫째, 쉽게 끊을 수 있는 약한 실이 한땀 한땀 바느질이 되었을 때는 책 무게를 견디는 가방도 되고 내 몸을 담는 옷도 된다. 짧은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되고 개개인의 역사가 되는 것처럼 가느다란 실이 모여 제 역할을 할 때 얼마나 힘이 강한지는 바느질을 해본 사람은 안다.

둘째, 우리가 내뱉은 말이나 행동을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일단 한 번 자른 천은 누구에 의해서도 원래대로 돌이킬 수 없다. 자른 그 시간에 비해 몇 십 배, 몇 백 배의 시간과 노력으로 이을 수는 있지만 흔적과 상처는 남는다.

셋째, 퀼팅 작품에는 남이 모르는 ‘너와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너무 서둘렀던 부분, 남은 눈치 채지 못해 별반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자꾸 내 눈길을 잡는 어설픈 부분, 아무도 칭찬하지 않지만 흡족하고 만족스러운 부분 등 퀼팅에는 내가 쏟은 시간과 이야기가 녹아있다.

넷째, 천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준다. 천을 자를 때 ‘꼭’ 정확함이란 있을 수 없다. 천은 우리의 감정처럼 움직인다. 씨실과 날실 사이의 그 조그마한 공간들이 길이가 조금 다른 천을 밀며 당기며 이을 수 있는 여유로움을 준다.

다섯째, 각자 가진 천 조각들을 나눌 때 더 조화로운 색과 아름다움을 가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나에게는 별반 필요치 않은 조그마한 한 조각의 천이 누군가의 작품에는 꼭 필요하고 빛을 발하듯이, 어떤 사람이 나누어 주는 애정과 관심이 내 인생을 더 풍부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먼 훗날, 백발의 할머니가 따뜻한 창가에서 조용히 바느질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나는 퀼팅을 노후 생활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싶다.

정경실<생활공감주부모니터 수성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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