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아름다운 선물

  • 입력 2011-11-16  |  수정 2011-11-16 08:06  |  발행일 2011-11-16 제22면

독일에서의 유학시절, 독일 남부지방 한 도시에서 레지던시 작가로 뽑혀 3년동안 지냈던 적이 있다. 무상으로 60여㎡의 아늑한 집과 작업실이 주어졌다. 문을 나서면 집 뒤쪽엔 아주 큰 정원이 있었는데, 주위로는 시냇물이 흘러 보기만 해도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매달 생활비와 1년에 두어 번 재료비도 지원이 돼 경제적으로 안정된 시기였다. 유학 중 그 때가 가장 행복했고 작품 활동이 왕성했던 시기가 아닌가 한다.

또 시에서 개인전을 열어주고 모든 지원과 홍보를 아끼지 않았으며 작품도 구입했다. 경제적으로 쫓기고 빠듯한 유학생활만 하던 나에게 삶에서의 풍요로움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해 주는 시기였다. 그 때도 아침잠이 많아서 자주 늦잠을 잤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작업실에 나서려고 문을 열면 문 앞에 가끔 예상치못한 선물이 놓여있었다. 정원에서 꺾은 듯한 꽃다발은 물론 과일, 잼을 담은 병들이 소복이 있었다. 조그만 쪽지와 함께 넣어 누가 보낸지 알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누가 보냈는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그럴 땐 난감했다. 누구에게 감사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어떤 모임이나 저녁식사에 초대받아 가면 아무 정보도 없이 보낸 물건을 누가 보냈는지 알게 되곤 한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그제서야 선물이야기가 나온다. “전에 과일잼을 몇 개 놔두었는데 잘 먹었느냐”라고. 그들은 특별히 감사의 말도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집에서 먹으려고 만든 것을 몇 개 줬을 뿐이란다. 그들의 마음이 나를 감동시켰다. 그들은 내가 늦잠을 자는 걸 알기 때문에(소문이 났나 보다) 굳이 깨우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문 앞에 놔두면서, 생색내기를 하지 않았다. 신문에 몇 번 기사가 나서 내가 어디에 사는지 그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하면 대체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냥 작업만 열심히 하면 된다.” 내가 열심히 작업한다고 그들에게 도움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들의 바람은 그것뿐이었다. 물론 지방도시라 사람들의 인심이 훈훈해서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인심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사람 사는 정이 넘쳤다.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마음 한켠이 따뜻해진다.

김건예 <화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