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양반집의 높은 방문턱

  • 입력 2011-12-13  |  수정 2011-12-13 07:21  |  발행일 2011-12-13 제23면
[문화산책] 양반집의 높은 방문턱

언젠가 안동 하회(河回)마을로 마음 맞는 친구들이랑 나들이를 나섰다. 글자 그대로 강(河)이 마을을 돌며(回))흐르고 있는 하회 마을을 왜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라 말하는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니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낙동강 위에 하나의 큰 연꽃처럼 떠있는 마을풍광은 평화로운 그림이었다. 두 명이 함께 걸으면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돌아서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수백 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고풍스러운 양반집을 둘러보니 시간의 궤적을 거슬러 온 듯하였다.

마치 옛 양반님들처럼 여기저기를 느긋이 거닐다가 문득, 친구가 양반 집 방문턱이 저렇게 높아서 부인들이 긴 치맛자락을 들고 넘나들기가 얼마나 불편했을까 염려하였다. 문턱에 팔을 얹은 채 바깥 풍경을 즐기는 풍류는 있었겠지만 사용하기에는 매우 불편한 모양새였다. ‘저렇게 높은 문턱은 능률적이지 않았을 것인데 우리 조상님들은 멋만 생각하고 왜 문턱 낮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라고 나름 비판하며 비합리적인 사고라고 우리끼리 수근대었다.

한참 후, 한옥 전문가인 어떤 분의 특강에서 상민 집과는 달리 왜 양반 집에만 방문턱이 그렇게 높은지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창호지는 훤한 달밤에 방 안의 일어나는 모습을 다 감추어 주지 못하였고 우리나라는 서양처럼 커튼 문화가 없었다. 부지런한 종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마당을 드나들며 일도 하고 이른 새벽에는 마당도 쓸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높은 문턱은 방 안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수 있는 바로 그 높이라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높은 문턱이 지닌 옛사람의 지혜를 알려고 하지 않고, 성급히 현대의 우리가 더 합리적일 것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며 속단하여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부끄러웠다.

어찌 방문턱만일까. 우리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깊은 지식도 없이 자신의 잣대로 마음대로 평가하고 단정하는 일이 그 동안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가 곧 국력인 요즈음, 우리 것에 대한 재평가의 시각이 많아지고 그와 함께 우리의 자부심도 커가고 있다. 애정의 눈길과 진지한 관심으로 우리의 우수한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차곡차곡 채워 나갔으면 한다.

정경실 <생활공감주부모니터 수성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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