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굴비 이야기

  • 입력 2011-12-20  |  수정 2011-12-20 07:28  |  발행일 2011-12-20 제22면

친한 이웃이 바닷가 친정에서 보내왔다며 굴비 두 마리를 주었다. 바싹 건조되어 볼품은 좀 없어 보였지만 예전에 기억하고 있는, 짠 듯하며 깊은 맛이 나는 바로 그 맛이었다. ‘어두육미’라며 머리에 붙어있는 살점까지 맛있게 발라먹다 보니, 이 말린 참조기가 임금님에게 진상되면서 ‘굴비’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재미있는 일화가 떠올랐다.

고려 중기에 막강한 외척 세력의 중심에 있던 이자겸은 자신의 둘째딸을 16대 왕 예종에게 시집을 보냈지만 허약한 예종이 일찍 세상을 뜨자, 그 아들인 인종에게 셋째딸을 왕비로, 넷째딸을 후궁으로 들여보낸다. 참으로 우습고 셈하기도 어려운 촌수 관계가 만들어진다. 자매지간을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로 만든 이자겸은 인종을 쥐락펴락하며 왕 위의 왕 노릇을 하였다. 독살 당할 위기까지 겪은 인종이 장성하여 마침내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며 신하이기도 한 이자겸을 멀리 전라도 영광 법성포로 귀양을 보내버린다.

귀양 가기 전의 이자겸은 온갖 산해진미를 맛보며 아마 그 시대에 해볼 수 있는 호강은 다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법성포 해풍에 건조된 참조기의 맛은 이제까지 먹어보지 못한, 맛난 것이었나 보다. 이자겸은 난생 처음 맛본, 소금에 절여 말린 참조기를 인종에게 진상을 올린다. 손짓으로 임금을 불렀던 권세에서 쫓겨 내려와 귀양을 온 처지로 진상하지만, 자존심만은 꺾지 않겠다는 뜻으로 진상품 위에 크게 ‘屈非(굴비)’라고 써 보낸다.

屈非(屈 굽힐 굴, 非 아닐 비). 굽히는 것은 아니다. 이 맛있는 생선을 임금에게 바치는 것은 살려달라고 애걸하며 굽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한번 맛을 보라는 뜻이다. 귀양 와서 일 년 후 죽게 되는 이자겸은 조용한 외딴 곳에서 혼자 굴비라고 쓰면서 더 이상 생사에 매이지 않는 어떤 자유로움과 여유를 느낀 것은 아닌지.

굴비라는 이름은 이렇게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지만, 그 맛은 냉장 보관으로 유통되기 때문인지 조금 달라져가는 듯하다. 어릴 적에 어머니께서 딱딱하게 바싹 건조된 짠 굴비를 쌀뜨물에 잠시 담가두었다가 숯불 석쇠에 노릇노릇 구워주시던, 짭조름하면서 쫄깃했던 옛 조기의 맛이 그립다.

정경실 <생활공감주부모니터 수성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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