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떤 유머에서처럼 저에게도 제각기 다른 세 가지 의미의 사과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아버지의 사과입니다. 한 알의 사과는 저에게 붉고 푸른 아버지의 노트와 같습니다. 시고 떫고 달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평생 사과농사를 지으신 아버지의 역사가 고스란히 읽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저도 그 역사의 방에서 바람 맞고 벌레 먹어가며 조금씩 영글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서 새콤달콤한 향기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사과나무 태생임을 잊은 적은 없습니다. 사과는 이브의 과일이 아니라 저에게 축복의 과일입니다.
두 번째 사과는 폴 세잔의 그림 속의 사과입니다. 먹을 순 없지만 저의 정신적 공복을 달래줄 수 있는 사과입니다. 가끔씩 삶의 형식이 건조하고 단조롭다고 느껴질 때 세잔의 사과는 저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사과를 그렸다는 세잔을 떠올리면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사고들이 부스스 깨어납니다. 평면의 도화지 위에 입체적인 사물을 그린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세잔은 대신 도화지 위에 사과를 재창조하기 위해 노력했다지요. 그래서일까요. 세잔은 사과를 둥근 모습이 아니라 세모꼴로 그렸어도 자신만의 사과를 그렸을 것이라는 믿음이 듭니다. 현실이라는 건조한 화폭을 핑계로 삶을 들먹거릴 때마다 저는 세잔의 사과를 마음의 식탁에 올립니다.
세 번째 사과는 마음으로 먹는 사과입니다. 그것도 진심을 듬뿍 얹어서 말입니다. 조금이라도 오만한 마음이 섞이거나 허심이 첨가되면 뒤탈이 나기 십상이며, 망설이다가 타이밍을 놓쳐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과를 관계의 사과라 부릅니다. 자존심이라는 껍질을 벗고 함께 마음을 나누면 금방 눈부신 진실의 속살을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저 역시 돌아보면 걸리는 것이 많습니다. 살다보면 붉으락푸르락 하는 시간의 흔들림을 겪는 것이라 이 사과 또한 특별한 의미의 사과입니다.
한 알의 사과를 깎는 밤이 세상의 모든 숨결을 고르는 것처럼 사각사각 어여쁩니다. 사과를, 사과를 아쉬움 없이 잘 나누어 먹어야겠습니다.
변희수 <시인·2011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자>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