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거룩한 에너지

  • 입력 2012-01-17  |  수정 2012-01-17 07:25  |  발행일 2012-01-17 제22면

지하 주차장에서 옆집에 사는 그녀를 만났습니다. 종종걸음으로 보아 또 연습실로 나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녀는 아마추어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악보도 잘 읽지 못했다는 그녀가 지금은 여러 무대에서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있다는 걸 익히 알고 있는 터라, 부러움과 격려의 시선을 보냅니다. 사라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잠시 색소폰의 선율이 아른거립니다. 이상하게도 그런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이쁜 엄살이겠지만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고 속상해하던 얼굴을 떠올려 봅니다. 악기를 보듬고 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소녀처럼 상기되어 있는 걸 보니, 그녀는 목하 소리를 내는 물건(?)과 사랑에 빠져있는 게 분명합니다.

연말이면 제가 아는 모임에서도 해마다 ‘문학의 밤’이라는 행사가 열립니다. 문학인과 비문학인을 구별하지 않고 열리는 따뜻한 자리여서 저도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합니다. 올해는 팔순을 훌쩍 넘긴 어르신이 한 편의 수필을 낭송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백발의 노안에 수줍게 어리던 그 열정은 아직도 저의 뇌리에 클로즈업되어 남아 있습니다. 그분에게서도 역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다른 생명체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인간 내면에서만 생성되는 신기한 힘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마음의 심지를 돋우려 애쓰는 그 힘을 저는 거룩한 에너지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곳엔 나이도 생의 지지부진한 군더더기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시대는 누구나 예술가입니다. 음악이니 문학이니 하는 것들도 결국 서로 통하고자하는 곡진한 신호체계와 같은 것일 것입니다. 하여 드러냄의 방식에 주저하지 않는 아마추어의 열정이 더 순순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거리에서 내 이웃에게서 문득 열정 하나를 조건으로 그 무엇과 사랑에 빠진 사람을 만나면 덩달아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진실한 자기감정을 감염시키는 것’이라 했습니다. 나누고 함께하는 것, 그것이 분명 우리의 삶을 더 멋지게 안내할 것입니다.

변희수 <시인·2011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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