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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다문화가정이 몇 가구 있다.
다문화가정이 급속도로 많아지고 있어서인지, 요즘은 피부색이 다르더라도 어색하거나 거리감이 생기지 않는다. 그만큼 다문화가정이 우리 가까이 있음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저 새댁은 캄보디아 새댁이야” “저 새댁은 아무개네 베트남 새댁이야”라고 들을 때마다 다른 지역에서 태어난 내가 이곳 경상도로 시집을 왔을 때가 떠오른다. 한국 사람이 지역만 달리해 시집을 와도 언어 차이나 생활방식 차이가 많은데, 외국에서 시집을 온 새댁에게 이 문화적 차이는 얼마나 클까. 또 이 때문에 얼마나 힘이 들까.
인천에서 경상도로 시집 와서 시아버님 제사를 처음 맞게 됐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온 나는 모르는 것도 많았지만, 사투리로 인해 소통되지 못하는 불편함 또한 말할 수 없이 컸다. 이곳 경상도에서는 큰 제사를 지낸 다음날 아침에는 동네 어르신을 모셔서 제삿밥을 나눠 드시게 한단다. 손위 동서들은 늦은 밤에 제사를 모시고 잠시 눈 붙였다가 이른 새벽부터 분주히 동네 어르신을 맞을 준비를 하고, 어머님은 동장님께 마을회관에서 아무개네 집에 제삿밥 드시러 오시라는 방송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신다.
이같은 시골풍습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의아했다. 남의 집에, 그것도 이른 아침에 그냥 밥도 아닌 제삿밥을 드시러 오시라고 하면 오실까 했는데 의외였다. 음료수 한 병씩 들고 오셔서 맛있게 드시고 가시는 게 아닌가. 다급해진 어머님은 두서를 몰라 우두커니 서있는 나에게 “야야, 정지 가서 지릉장 좀 가온나” 하신다. 하지만 나는 정지도 모르고 지릉장도 모른다.
이런 일은 흔했다. 언어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야단도 많이 맞았던 막내며느리를 그래도 살갑게 대해 주시던 시어머님도 하늘나라로 가신지 1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곳으로 시집을 온지가 25년이나 되었는데도 아직도 뜻 모르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가 많다. 그런데 외국에서 시집온 우리 동네의 캄보디아·베트남 새댁은 이곳에 살면서 얼마나 고국과 부모형제, 음식이 그리울까 싶다. 그들에게 음료수 하나 건네주며 무언의 응원을 한다.
“우리 열심히 잘살아 보자!”
지미희 <대구국악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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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풍습과 문화차이](https://www.yeongnam.com/mnt/file/201201/20120118.01022072914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