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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마음이 이울었다 싶어지면 북대암을 찾습니다. 왜 그리도 가파른 절벽에 암자를 매달아 놓았는지, 숨이 턱에 차오릅니다. 그럼에도 한 발 한 발 오르다 보면 머릿속이 훤하게 맑아집니다. 질문이 우문이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입니다. 육체적인 노동이 정신에 베푸는 은혜는 생각보다 훨씬 감미롭습니다. 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처럼 육체가 오히려 정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참 오랜만에 다리품을 팔아 흘리는 땀입니다. 나목에 걸린 낮달이 쌕쌕거리는 저의 모습에 실눈같은 웃음을 흘립니다. 이 곳에서는 나무마저도 수도승같은 표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제가 북대암을 종종 찾는 이유를 고백하자면 부처님보다 공양간에 더 마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 북대암에 들를 때는 공양시간을 맞추려고 나름 애를 쓰기도 합니다. 이곳은 공양간을 점령(?)하고 있는 보살님의 인심이 유독 푸근한지라 저같이 절밥 먹기가 서먹했던 이들도 아주 스스럼이 없습니다. 법당에선 얼렁뚱땅 눈도장만 찍어두고, 아래채 공양간으로 내려와서야 비로소 신발끈을 풀어놓습니다. 곰삭은 장아찌와 지난 가을 햇빛의 가피(加被)를 듬뿍 입었을 호박고지며 무말랭이로 차려진 소찬에 잊었던 시장기가 몰려옵니다. 마음에 올리는 한 줄 법문보다 혀끝을 먼저 탐했으니 미욱이라는 말이 슬쩍 떠오릅니다.
이곳 공양간에는 제가 좋아하는 두레상이 여러 개 있습니다. 공양 때가 되면 두레상들이 여기저기 꽃처럼 활짝 펼쳐집니다. 모서리가 없는 상에 둘레둘레 면식도 없는 사람과 섞여 밥을 먹다 보면 때로는 식솔에게나 느낄 법한 그 무엇이 콧날을 시큰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각과 모서리를 경계로 제 자리를 확연하게 구분해 놓은 서양식 식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교감이 이 둥근 상머리에서는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무릇 생명에게 먹는 행위만큼 중요한 거사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면 곧잘 ‘언제 밥 한 끼 하자’는 말을 버릇처럼 하는 지도 모릅니다. 이런 말을 듣게 되면, 설령 그것이 빈말일지라도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밥 한 끼 나누는 공덕으로 이울어가던 마음에 통통하게 살이 오릅니다.
변희수<시인·2011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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