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기억여행⑺

  • 입력 2012-02-16  |  수정 2012-02-16 07:28  |  발행일 2012-02-16 제18면

“학교에서 입학하기 전에는 어떠한 이유로든지 알파벳을 가르치지 말라는 것으로 봐서, 1학년 때 알파벳을 배우나 보지?”

“맞았어. 1년 내내 알파벳을 가르치는데, 내 딸아이가 얼마나 지겨워하는지…. 그런데 그것을 1학년만 하는 게 아니라, 2학년까지 한다니까.”

“알파벳이 그렇게 오랫동안 배울 분량이 되나?”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 그런데 그게 아니야. 라틴문자부터 이탤릭체라고 알려진 필사체, 그리고 독일의 전통적인 문자까지 완벽하게 쓸 때까지 쓰고 또 쓰게 해. 우리가 초등학교 때 붓글씨를 배우고, 중학교 때 펜맨십을 쓰는 거와 같아. 그렇게 함으로써 글씨를 배우고, 그림의 기초인 선을 그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지.”

“정말 대단하군. 마치 붓글씨를 배울 때 한 일(一)자만 수없이 쓰는 것과 비슷하네. 사실 붓글씨에서 점 하나만 잘 그려도, 모든 글자를 잘 쓸 수 있다고 하잖아? 점 하나를 그리는 데도 붓의 봉을 여섯번 돌린다고 하지, 아마? 거기에 글자의 모든 원리가 다 있는 것이지. 그런 각도에서 보면 독일은 정말 기본에 충실한 사회네.”

“기본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얘네들은 1학년 때 쓰레기를 100여 가지로 분류하는 법을 가르쳐. 그리고 교통법규를 배우고 실제로 익히는데 모든 수업시간을 할애해. 어느 중학교에서는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하는 데만 1년이 걸린다나? 나도 처음 알았어. 아이들에게 그 많은 방법을 모두 가르치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키워주는 거래.”

“그럼 네 딸애는 글씨를 잘 쓰겠구나. 요즘 글씨 못 쓰는 애들 많은데…. 그런데 네 딸애가 안 보인다.”

순간 친구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고, 나는 콘스탄츠의 안개 속으로 한 소녀가 왔다갔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렇게 해서 콘스탄츠로의 나의 기억여행은 그 딸아이를 가슴에 묻은 친구의 기억과 함께 보덴제 호숫가에 닻을 내렸다.

임진수<계명대 유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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