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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들려오는 토닥거리는 빗소리가 정겹다. 이렇게 비가 속살거리는 밤이면 풋풋한 녹차향보다 묵직한 발효차의 향이 분위기를 더욱 돋우고, 한결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혼자서 차를 마주하고 앉으면 마치 높은 산을 오르다가 시원한 냇물에 발을 담그고 한 순간 쉬어가는 그런 정취를 느끼게 하고, 고즈넉한 산사를 찾은 듯 세속의 번뇌를 잠시 뒤로 할 수 있어 나에게는 참으로 귀중한 시간이다.
항다반사(恒茶飯事)라는 말이 있듯, 차는 이제 내 생활과 밀착돼 있다. 지인들과 정담을 나눌 때나 책과 더불어 혼자 사색하는 자리에도 차는 항상 나와 함께한다. 멀리 여행을 떠나기 위한 준비물 중에도 차와 다구는 빠지지 않는다.
때로는 차를 즐기지 않는 이들에게 말없이 차를 권할 때가 많다. 차가 왜 좋은지, 어떤 맛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처음엔 거부하다가도 그러기를 여러 차례 하다보면 언젠가 스스로 찻자리를 가까이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건륭황제 때 심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 아내 운이 연꽃이 저녁에 오므리고 아침에 피는 것을 보게 됐다. 운은 작은 비단주머니를 만들고, 그 속에 차를 넣은 뒤 연꽃이 오무릴 때 넣어 두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꺼내 차를 우려 남편에게 바쳤다. 그 향기가 대단히 뛰어났음은 상상만으로도 충분하다.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인가. 우리들 마음에도 이같은 아름다움을 심고 싶은 것이 나로 하여금 주위에 차를 권하게 하는 것 같다.
차는 아름다운 자기 표현이며, 성숙된 삶의 표현이다. 차의 다섯 가지 맛은 심신의 안정은 물론, 지·덕·체를 고루 갖추게 하는 종합예술이다. 동(動)과 정(靜)의 균형 속에 겸손과 질서를 지키게 하며,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키워준다. 또 인내를 길러주고, 해이해진 생활에 활력을 주며, 지난 생활을 반성하게 한다. 그런 의미로 보면 나에게 차 한 잔의 자리는 정성을 다해 마음을 화장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입춘이 지났다. 해동이 되면 찻잎이 뾰족이 올라올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지금부터 차축제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부산해진다. 어느 지역이나 특별히 다를 것도 없는 행사가 사람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했다. 올해는 차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진정한 문화의 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서정임<대구차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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