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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고교 3학년인 딸아이를 다른 엄마들처럼 살뜰하게 챙겨주지 못한다. 아침에 깨워주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입시생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스트레스를 줄이는 음식 따위를 마련해 주지도 못한다. 게다가 입시에 관한 정보도 먹통이다. 그래서 항상 딸아이에게 미안하다.
이렇게 미안하게 여기며 지내던 중 내가 할 수 있는 입시생 엄마 노릇이 하나 생각났다. 많은 엄마가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교회나 절에 가서 기도를 하는 모양인데, 나도 그것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단한 생각을 해낸 것처럼 신이 나서 딸아이에게 호언을 했다. “우진아, 엄마가 매일 너의 합격을 위해 일정시간 기도를 해야겠어”라고. 여기서 합격이란 물론 명문대 합격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의 대단한 결심에 대한 딸아이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았다. “엄마, 내가 매일 엄마의 성공을 위해 기도를 한다면 어떻겠어.” 그건 정말 부담스럽다.
생각해 보라. 우리 아이들이 “우리 아빠가 어서 빨리 이사직으로 승진하도록 해 주세요”라고 매일 기도를 한다면. 또는 “우리 엄마가 다른 엄마들처럼 재테크를 잘 해서 부자가 되도록 해 주세요” “우리 아빠가 좀 더 좋은 직업을 갖도록 해 주세요”라고 매일 기도를 한다면. 아아, 싫다. 이러한 상황은 생각만 해도 악몽이다. 부모들은 그러한 기도가 고맙기보다는 상당한 부담으로 느껴질 것이다.
승진을 못하는 아빠 자신이 부끄럽고, 다른 엄마처럼 재테크로 큰 재산을 모으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울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갖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울 수도 있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이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 당연한 기대가 도를 넘어 아이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정도가 되어 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과 기대가 아니다. 아이를 억압하는 채찍질로 바뀌게 될 것이다.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부모의 채찍질보다는 자신을 인정해주고, 신뢰를 갖고 지켜봐 주는 따뜻한 눈길이 아닐까.
고선미 <대구교대 음악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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