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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외로운 이에게는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텔레비전 속의 세계는 평화와 휴식보다 고통을 더 많이 안겨준다. 밤마다 수십 개 넘는 채널을 돌려보다 보면 지옥이 따로 없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밤새 혼자 켜져 있던 텔레비전을 아침에 발견하는 것은 야행성 도시인에게 드문 일이 아니다. 점멸하는 불빛을 수 시간 동안 쏟아내고서도 텔레비전은 지친 기색이 없다.
세계인이 1년간 TV를 보는데 쓰는 시간은 1조시간, 즉 1억년이나 된다고 한다. ‘TV의 무서운 진실’의 저자 마틴 라지는 TV 프로그램의 유해성보다 전자기기와 TV가 뿜어내는 빛의 위험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TV를 통해 보는 것은 영상이 아니라 ‘빛’이라는 것이다.
전등을 모두 꺼도 집안은 일정 조도 이하로 어두워지지 않는다. 창밖 가로등 불빛은 물론 전자시계와 냉장고의 표시등, 충전 중인 전화기, 가스누설 감지기가 보일러 점검 표시등과 함께 깜빡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도시에 더 이상 적막과 어둠은 없어 보인다. 밤이 되면 도시는 잠들어 있어야 할 빛과 소리를 짜내듯 끌어올린다. 물소리와 발자국소리뿐 아니라 맞은편 아파트 거실 통유리창으로 텔레비전 불빛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가 하면, 아래층 휴대폰의 진동음을 환각처럼 들려주기도 한다. 그런 것을 견디다보면 언젠가부터 오히려 적막과 어둠을 견딜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4월 마지막주 일주일을 ‘TV-Off 주간’으로 정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국적을 알 수 없는 무슨무슨 데이(Day)가 많이 생겨났다. 상술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축제와 낭만이 부족한 현실에서 그리 나쁠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중 몇몇은 ‘TV-Off 데이’나 지구를 위해 한 시간 전등을 끄는 ‘Earth Hour’같은 축제였으면 한다.
현대인에게는 물리적인 폭력만 무서운 게 아니다. ‘전자마약’이라고까지 불리는 텔레비전과 전자기기의 폭력에 노출된 청소년에게 책읽기를 강조한다고 하여 큰 효과가 있을 리 없다. 가끔은 집안의 전등과 전자기기를 모두 끄고 어둠과 적막을 체험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조혜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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