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그림을 불태우다

  • 입력 2012-06-08  |  수정 2012-06-08 07:28  |  발행일 2012-06-08 제18면

몇주 전이었다. 아침부터 서울의 전시를 한꺼번에 다 볼 욕심으로 같이 갈 분들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나섰다. 생활에 쫓기다보니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한 화랑에서 천경자 화백의 전시를 보게 됐다. 나는 그 분을, 그림을 그리는 가장 자유롭고 낭만적인 작가로 기억한다. 그렇게 철저하게 여성으로서의 감수성이 가득한 작가적 매력을 가지고 산 분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매 시기를 기록으로 남기듯 희로애락을 그림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삶의 기록이기도 했다.

마지막 코너인 ‘화가의 방’에는 그가 사용한 모든 화구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의 느낌은 잠시 자리를 비웠던 그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았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주기를 바랐을까. 아니면 기억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기록하기 위해 그렸을까.

화랑을 나오면서 그가 생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았다. 그의 모습에서 자유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어깨 너머로 날개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순간 ‘아! 나는 저렇게 살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일순간 우울해졌다.

다소 침울한 마음으로 대구로 내려오는데, 한 작가 친구에게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화가이면서 학원을 운영하던 친구가 학원을 접고 작가로의 길만 가겠다는 생각을 밝힌 것이다. 그 친구는 이제 생계를 어찌할 것인가. ‘가족을 부양하며 그림만 그리며 살 수 있는 나이가 아닌데, 참으로 무모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그림을 그리고 싶은 생각에 짓눌렸으면 그럴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그 친구의 소식을 접하고, 마치 전염병에 걸린 듯 지난 10년간 모아두었던 작품을 대부분 정리했다. 미련을 두고 가져온 작품이, 쓰레기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불태워지는게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다. 때때로 사람은 기억되기를 바라면서 행위를 하지만, 때로는 기억되기를 거부하기도 하나 보다. 작품을 정리하고 보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 친구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작업에 마지막 남은 정열을 바치는 그 친구의 한없는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부디 성공하기를 기원해 본다. 모든 화가의 꿈을 실어서.

류재민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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