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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왜 그리느냐. 그리면서 후회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화가 모두가 그렇겠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가족에게 충분한 금전적인 지원을 못하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그림을 시작할 때부터 밥만 먹여주면 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모든 일은 그림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첫 개인전을 열고 싶어 처음으로 화랑을 노크했을 때 그 숨막히는 감정은 어지러움을 동반했다. 과연 이 공간을 내가 메울 수 있을까. 남들이 나를 알아줄까. 결혼을 하고 직장이 없어 여기저기서 돈을 빌려 집에다 주고는, 조그만 작업실에서 전시장에 들어올 사람을 상상하면서 한 장 한 장 그림을 펜으로 그렸다.
그리고 첫 전시회를 열었다. 펜으로 A4지에 그린 작품 수십 장을 낚싯줄에 집게로 매달았다. 비록 돈이 없어 물감을 사지 못했지만, 이 펜으로 승부하리라 생각했다. 혹시나 누가 나를 대충하는 작가라 욕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보다는 1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내 공간에 내 그림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관람객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전시하지 말 것 그랬나’라며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모두 유화로 작품을 그렸는데, 나는 A4지에 액자도 없이 집게로 마치 빨래를 널 듯 걸었던 것이다. 절망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하고, 전시장에 있기조차 겁이 났다.
그런데 어느 날 처음 보는 낯선 분이 찾아왔다. 찬찬히 그림을 훑어보더니 “잘 봤습니다. 재미있군요”라고는 사라졌다. 며칠 후 스승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전시를 하면서 왜 연락을 하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우물쭈물 대답을 하지 못했다. 차마 ‘그림을 유화로 그리지 못해서’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셨냐”고 물어봤더니 신문에서 내 전시기사를 봤다고 했다. 문득 스쳐가는 얼굴이 있었다. ‘그 분이 신문기자였구나.’ 얼른 그 신문을 찾아보았다. 진짜 내 전시기사가 실려 있었다.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그림을 그리면서 지금까지 그 분을 잊지 못한다.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용기를 잃지 않았던 건 침묵으로만 그려온 나의 별 볼일없는 초라한 세계를 인정해준 그 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믿는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진실되면 언젠가 인정받으리라는 사실을.
류재민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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