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문자에 대하여

  • 입력 2012-06-26  |  수정 2012-06-26 07:29  |  발행일 2012-06-26 제22면

보르헤스는 “그 우아한 필체-이제는 타자기가 우리로 하여금 잊도록 만든 예술”이라고 그의 작품 ‘브로디의 보고서’에서 문자와 필체에 대한 사랑을 고백했다. 타자기에서 워드프로세서를 거쳐 태블릿PC로까지 진화한 지금, 이제는 작가들조차 더 이상 원고를 육필로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아름다운 필체를 위해 정성들여 잉크병을 열기보다 키보드를 이용해 빠른 시간에 문서를 작성하는데 익숙하다.

문자가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읽고 쓰는 능력은 문명의 초석을 세웠고, 이후 문맹을 벗어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 왔다. 그러나 문맹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 넘쳐나는 활자매체와 도서의 대량생산 앞에서 문자는 오히려 그 중요성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만 같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한때 사람들이 활자중독이 아닌가 걱정했다. 그리고 비록 종이책은 아니지만, 스마트폰이 읽기와 쓰기를 활성화시키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들여다보는 것은 대부분 게임이나 인터넷 검색인 걸 알 수 있다. 흔히 주고받는 문자메시지 또한 깊이 있는 대화라기보다 불필요한 수다의 연장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 책꽂이에 꽂혀있는 존재이자, 흰 종이 위에 군데군데 박힌 검은 존재인 활자들. ‘과연 저 글자들이 우리의 생각을 제대로 대변해주고 있는가’하고 의심스러울 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표현도구 중에서 문자처럼 효율적이고 훌륭한 것은 없다. 백 마디의 말로 표현하지 못할 어떤 감정을 단지 한 문장으로 이면에 있는 의미까지 전달해주는 문학작품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하면 평생 책만 읽어도 모자랄 지경이다.

하나같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시대다. 하지만 소통의 도구인 문자를 다루고 사랑하는 일에는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꼭 유려한 문체와 수사를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말과 글과 그 속에 담기거나 담길 것에 대한 진지한 관심만으로도 충분하다.

조혜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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