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색계(色界)에 놀다

  • 입력 2012-07-02  |  수정 2012-07-02 07:30  |  발행일 2012-07-02 제23면
[문화산책] 색계(色界)에 놀다

나는 직녀(織女)다.

온갖 색색의 실이 나의 밥줄이고, 그 색색의 실이 이루어내는 색계에서 작업의 기쁨을 느끼며 살아왔다. 베틀에 앉으면 문병란 시인의 시 ‘직녀에게’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 은하수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그 순간 나는 은하수 곁에 씨줄과 날줄을 걸어놓은 직녀가 된다.

학교에서 학생과 함께 베를 짜고, 색색의 빛깔로 염색을 하고,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며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20년을 훌쩍 넘었다. 어떤 때는 원하는 색을 얻지 못해 몇 번이고 작업을 다시 하기도 했다. 머릿속으로 원하는 형태의 작품이 나오지 않아 우울한 직녀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살아온 많은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자양분이 되어 내 인생을 알록달록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줬다. 이렇게 살다보니 당연히 실이나 천이 자아내는 색의 세계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색이 단순한 시각 차원이 아니라, 학술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큰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 내리는 우울한 거리를 밝혀주는 노란색 우산이나 작은 빨간색 장화는 무채색에 갇혀있던 시야를 생기 있게 밝혀준다. 가파른 오르막 계단에 그려진 커다란 노란색 해바라기는 힘든 발걸음에 힘을 받쳐주었다.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회색 아스팔트 위를 달려가는 주황색 택시조차도 활력을 줄 때가 있다. 수많은 색이 관심 밖에 있던 그 무엇을, 관심 속으로 끌어당겨 의미를 부여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순간순간 느끼며 살아온 것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일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한 인생의 무늬를 짜내려가고 있다면 과연 나는 어떤 무늬를 만들고 있을까,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의 생에 채색된 무늬로 남을 수 있는가 생각하는 날이 있다. 아름다운 무늬의 천을 짜서 다른 사람의 생에 조금이라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기도 한다.

나는 오늘도 베틀에 앉아 어떤 색의 실로 어떤 작품을 만들까 궁리를 한다. 깊은 생각 끝에 어떤 작품이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직녀가 은하수 너머의 견우를 생각하며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듯이 한올 한올 자아올릴 생각이다. 그러면서 우리 생을 한층 풍요롭게 해주는 색계에 한 발 더 깊이 들어가려고 한다.

김영숙 <경일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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