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꽃이 진 자리

  • 입력 2012-07-16  |  수정 2012-07-16 07:23  |  발행일 2012-07-16 제23면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하랴. 봄날의 낙화를 안타까워했더니, 꽃들이 헛되이 저버린 건 아니었다. 꽃 진 자리마다 이제 푸른 잎들이 하늘을 가리고, 어떤 나무에는 조그마한 열매들이 나날이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무심히 보고 말면 별일 없을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경이로움을 금치 못한다. 무슨 일이든 그렇다. 사람도 무심히 지나치면 나와 상관없었을 사람을, 곰곰이 바라보다 덜컥 사랑도 하고 미움도 갖게 된다. 그 모든 것이 순간에 이루어지고 마는 것이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지, 자연을 본뜬 온갖 창작물을 만들기도 한다. 나도 그렇다. 어떤 날은 무명천을 오려 붙여서 매화를 만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비단천으로 모란을 꽃피워보기도 한다. 내가 만든 매화나 모란이 다른 사람 눈에는 무덤덤한 대상이더라도 내 눈에는 애착을 갖게 하는 피조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또 보이는 만큼 상실의 아픔도 갖게 된다. 굳이 남의 담장 너머 보이는 능소화가 그리도 탐나고, 남의 마당에 놓인 오래된 장독이 아주 아주 탐이 난다. 몰랐더라면 괜찮았을 것을, 두고두고 맘에 남는다. 이럴 땐 법정스님의 무소유 철학도 소용없다. 오직 그것만이 한참이나 내 탐심을 부추긴다.

그럴 때, 나는 아주 의욕적인 직녀가 된다. 공들여 염색한 천에 솜을 두어 부피감을 만들어 능소화도 바느질하고, 이름모를 작은 새도 바느질한다. 질박한 무명이 한땀 한땀 꽃으로 바뀌어가는 동안, 나는 비로소 탐심에서도 물욕에서도 벗어나 오로지 창작의 기쁨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세월도 한참 지나가 버렸다.

꽃이 아름다운 계절에 장마가 시작되면 마음이 안타까워진다. 석류꽃도 능소화도 뚝뚝 떨어진다. 그러나 꽃이 진다고 바람을 탓할 수 없듯이, 비바람이 불어도 걱정 않는게 좋다. 긴 장마를 견딘 후엔, 꽃이 진 모든 자리에 열매가 맺힐 것이다. 장마를 거친 열매는 꽃보다 고울지도 모른다. 올여름의 이 장마가 끝나면, 꽃을 탐내던 마음을 옮겨 열매를 수놓아 보리라 마음먹는다.

김영숙 <경일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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