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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사람만으로는 위안이 되지 않는 숱한 시간이 있음을 알게 된다. 때로는 영화로, 때로는 쇼핑으로, 때로는 먹을거리로 위안을 삼으려 해도 도무지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다. 이럴 때 리스트의 피아노곡 ‘위안’을 들으면 정말 위로가 많이 된다. 고요하고 매력적인 멜로디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정말 음악에 맞게 제목을 잘 붙인 것 같다.
나는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고 전시할 때마다 제목에 많은 신경을 쓴다. 같은 의미의 단어도 조금씩 다른 미묘한 감정을 담아 다르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 한다’와 ‘자알 한다’의 차이처럼 실 한 올의 차이로도 전혀 다른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다 만든 작품을 세로로 놓을까, 가로로 놓을까 하며 열두 번도 더 위치를 바꿔본 사람은 제목의 쉼표 하나, 줄표 하나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안다. 이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작품을 거는 작가에 비해, 감상하는 사람은 얼마나 순식간에 그 곁을 스쳐지나가는지 가슴 한쪽이 상처입은 듯 아리기도 하다. 그러니 제목을 잘 정하는 일에는 스쳐지나는 사람의 발걸음을 잠시 붙잡는 힘도 있다고 믿는다.
예전 어느 전위예술 전시회에서 본 ‘빨래’라는 작품은 당일만 전시할 수 있었다. 모래사장 한 켠에 작은 판잣집이 있고, 빨랫대에는 알록달록한 빨래가 강바람에 펄럭였다. 그러나 빨래를 널어놓은 아주머니가 입어야 된다며 다 마른 빨래를 걷어가 버렸기 때문에 더는 전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작품활동으로 봐야 하는지 왈가왈부했지만, 다음날 작가는 거기에 다른 제목을 갖다 붙였다. ‘빨래가 마른 뒤…’ 그 제목이 걸린 곳은 빈 빨랫대였다. 빨래를 빨래로 봐야 할지, 작품으로 봐야 할지 복잡하던 생각이 일순간 개운해졌다.
제목을 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아무리 해도 딱 들어맞는 제목이 떠오르지 않으면 ‘무제’라는 제목이 구원투수가 되기도 하지만, 모든 작품이 무제가 될 수 없으니 나는 이제도 저제도 제목을 붙이는 일에 많은 힘을 쏟는다. 이 글도 마찬가지다. 무슨 제목을 붙일까 하고 고민하다가 ‘제목’을 제목으로 달았다. 이래저래 제목을 다는 일은 참 힘들다.
김영숙 <경일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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