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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면 우리 동네에 능소화가 아주 탐스럽게 피는 집이 있다. 담장 너머로 휘휘 늘어진 능소화의 고운 자태가 여름을 더 아름답게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집 담장에는 능소화가 활짝 피어 있다.
어릴 적 고향집 담장에 능소화가 탐스럽게 피었다가 꽃이 통째로 뚝 떨어지는 것을 매년 보고 자랐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능소화를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들지만, 능소화의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왠지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꽃이 질 때도 시들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떨어지는 능소화의 모습이 너무 정갈하기도 하지만, 전설 속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능소화에 얽힌 슬픈 전설은 너무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전설 속의 능소화는 임을 그리는 마음으로 담장을 올라갔다고 한다. 옛날 ‘소화’라는 이름을 가진 궁녀가 단 한 번의 성은을 입고 빈이 되었으나, 그 후 다시는 찾아오지 않은 임금을 기다리다 요절하여 그 넋이 꽃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그 하염없는 기다림이 아직도 여전한지 능소화는 지금도 연방 담 너머를 기웃거린다. 단 하나의 사랑을 위해 애처롭게 꽃으로 피어 아직도 그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기다리다가 시들어 떨어지는 게 아니라 활짝 핀 채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떨어지는 능소화. 그래서 더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금방 먹은 마음도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리는 요즘 세상에, 죽어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는 그녀의 아름다운 절개는 보는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명예와 영광이라는 꽃말을 지닌 능소화는 양반가의 선비와 같은 기개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정열적인 붉은빛을 띠어 금등화(金藤花 )라고도 한다. 옛날 문과에 장원급제를 하면 임금이 어사화 화관에 꽂아주는 꽃이 바로 능소화다. 그래서 능소화는 양반가의 상징이며, 조선시대에는 양반집에만 심어 양반꽃이라 했다. 또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토지’에서 능소화를 최참판댁 가문의 명예를 상징하는 꽃으로 묘사했다.
담장 너머로 수줍은 듯 미소짓는 능소화가 여기저기 울타리를 타고 피어나는 요즈음, 능소화의 고운 빛 속에서 소화의 절개와 선비의 명예, 자존감을 문인화 한 폭으로 잡으려고 이집저집 울타리 아래에 발걸음을 멈추곤 한다.
이미란 <대구문인화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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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능소화가 피면](https://www.yeongnam.com/mnt/file/201208/20120822.010220728420001i1.jpg)



